1.23.(월). 마3:1-12 <광야와 세례>
1. 광야는 성도가 정착을 고려할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피해가서도 안 되는 곳입니다. 광야는 반드시 믿음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입니다. 그곳에 잠시 거주하면서 믿음을 검증받아야 할 관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도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곳이었지만, 갈대아 우르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온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은 아직 광야였습니다.
2.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취득하여 이삭에게 물려줄 재산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나안 땅의 나그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창세기 23:4). 진짜 가나안은 따로 있으며, 이 땅의 가나안은 단지 진짜 가나안을 바라보게 하는 모형으로 인식하며 살았던 삶이 아브라함의 삶이었습니다.
3. 세례 요한은 이 광야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신약의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성도들이 어디에서 그분을 맞이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런 삶을 통해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옷은 광야의 옷이었고, 그의 음식이 광야의 음식이었으며, 그의 말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4.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 곧 회개(오늘 본문의 ‘회개’는 죄악을 뉘우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바꾸는 행위를 말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자기가 왕이 되어 있는 나라를 버리고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를 받아들이라.’는 명령입니다)한 자들이 광야에 나가서 물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침례입니다. 씻는 의식이 아닙니다. 자기부인의 의식입니다. 자신의 옛사람을 모두 부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양심 받기를 소원하며, 자신을 기꺼이 물에 잠그는 것입니다.
5. 이런 사람들이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주께서 임하실 길을 곧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그 속에서부터 쭉정이들을 태우시고 알맹이만 남기는 구원 사건을 이루십니다(11-12절).
6. 자기들이 뭔가 내놓을 것을 가진 존재-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자들은 광야에 나가서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받는 세례는 그들이 확보하는 또 하나의 자격증일 뿐입니다. 광야에서 회개의 길을 준비하는 것과 오히려 반대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세례 주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세례는 자기 부인의 고백이지, 뭔가를 인증받는 자격증이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좋은 열매는 자기 부인의 열매입니다.
7.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며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광야로 나갑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광야로 기꺼이 나갑니다. 그 광야에 나가서 물세례를 받습니다. 자기 부인의 믿음을 고백하며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광야에서 믿는 자에게 주실 성령의 세례를 고대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렇게 광야에서 물세례를 주면서 그 광야의 길을 따라 오실 분, 성령 세례 주실 분을 기다렸습니다.
8. 주님, 자기 부인을 강요당하는 광야의 삶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광야에서 나를 세우고, 나의 길을 개척하는 엉뚱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서 내 안의 옛 것들을 불사르실 때에, 아까워하지 않겠습니다. 내 안의 골짜기와 뾰족한 언덕들을 고르게 하여 주옵소서. 주 성령께서 행하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시켜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