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금) 마12:1-8 묵상 <안식일의 주인>
1. 말씀으로 하루의 풍성함을 열어가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는 제자들을 보고 안식일 규정을 들어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의 참 의미를 주님께서 가르치십니다.
2.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39개 금지 조항으로 세분화했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은 금지 조항에 해당되어,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위반하였다라고 스승인 예수님에게 문제 제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제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스승인 예수님을 비난하려는 의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배고픈 사람을 보며 연민의 눈빛이 아니라, 손에 들린 규정을 보며 감시의 눈빛만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무엘상 21장 1~7절까지, 다윗의 제사장이 음식 먹는 사건을 말씀하시며 또한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말씀하시며 반박하십니다. 무슨말씀입니까? 규례를 지키기 위한 규례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규례임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4. 바리새인들의 열심은 신앙이고 믿음인 것 같지만, 안식일에 대한 저들의 신념은 신앙이 아닙니다. 굳이 신앙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신앙 지상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앙 지상주의는 신앙이 아닙니다. 내용 없는 형식, 의미 없는 반복된 행위들로, 안식일로 말미암아,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막아서고 있다면, 안식일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은 곁가지 조항들로서 오히려 없어져야 할 것들이지 수호하고 보존해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5. 예수님은 무죄한 자를 정죄하는 자비없는 저들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제사가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는 호세아서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호세아 6장 6절) 이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사람들을 위한 자비에 있다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제사로 인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안식일은 '나도 모르게 금지된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워해야 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하고 경험하는 "감사의 날"입니다.
6.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어떤 조항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로 논쟁하는 날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 안에 거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핵심은 '의무 준수'가 아니라, "관계 누림"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아니라, 안식일의 근본 의도를 망각하고 규정만 내세우면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외면하는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안식일을 범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7. 바리새인들은 두손으로 우리를 손가락질하지만,
예수님은 두손을 벌려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저리 가라며 쫓아내지만, 예수님은 어서 오라며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내가 왜 그러는지 누구도 관심이 없고, 오히려 내 외모 말투 표정을 갖고 시비를 걸지만, 단 한 분 예수님은 우리가 왜 그러는지 잘 아십니다. 배고픔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고통 때문에, 시기심 때문에, 무엇보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 상황을 잘 아십니다. 나를 잘 하시는 그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8.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문구에 매여, 말씀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기둥과 터는 진리입니다. 교회는 진리로 말미암아 묶인 것이 풀려나, 자유를 얻고 생명을 누리는 곳입니다. 혹 이와 반대로 더 얽매이고 생기를 잃어가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십시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 가야 합니다.
9.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규정이 아니라, 움직이는 진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