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마22:34-46 묵상 <가장 큰 계명 논쟁>
1. 사두개인들도 부활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뜨리는데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바리새인들이 계략을 꾸밉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율법사를 세워 예수님을 시험하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2. 예수님은 이 질문에 먼저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5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율법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십계명 1-4계명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사랑은 신뢰하는 것이요, 감사하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이요, 의지하는 것이요, 찬양하는 것이요, 소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둘째 되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이 역시 율법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십계명 5-10계명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웃 사랑 없는 하나님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이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이 두 사랑이 삶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율법의 정신이라 하신 것입니다.
4.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한 율법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고,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가장 큰 계명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한 메시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율법사는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혀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이 율법사의 모습을 묵상할 때 그 안에 보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습니다.
6. 예배를 통하여 또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하며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을 경험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며 그분과 교제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마치 오늘 본문의 율법사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깨닫지 못한 채, 율법사처럼 어리석은 질문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난 뒤 바리새인들에게 거꾸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이 바로 너희가 그토록 기다리고 원한 메시야라는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십니다.
8. 우리가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도록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는 주님이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알았습니다.
9. 그러나, 성경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했다고 증거합니다. 그리스도는 다윗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자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보다 크실 뿐 아니라 다윗이 주라 고백한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그저 유대 왕국이 아니라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10. 오늘 말씀은 조금 어렵지만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 사랑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금 주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