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금). 마23:29-39 묵상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
1.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6번 반복해서 "화있을찌어다" 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7번째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29)
2.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저들의 외식은 의로움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외식입니다. 맹세에서의 외식, 헌금의 외식, 겉차림의 외식 등 모든 외식이 본질적으로 자기의 의를 가장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3.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는 이유는 진정으로 의인들의 교훈과 삶을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인정하며 회개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4. 선지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척 하면서, 자신들이 의로운 자인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르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이들의 유일한 관심은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에 있습니다.
5. 이들을 보며, 예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그들이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31절). 그들은 도저히 고쳐질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의를 가장하는 외식을 하는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모여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품으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6. 십자가 아래에 모인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더러운 자임을 자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더러움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진정으로 의롭게 되는 일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는 일이 시작됩니다. 십자가 외에는 죄인이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7.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결코 십자가의 복음, 애통하는 복음, 가난한 자의 복음을 붙들지 않습니다. 의롭게 보이기만을 원할 뿐 진정으로 의롭게 되고 싶어 하는 소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의 더러움을 감추는 일에 목숨을 걸고, 만약에 누군가가 자신의 더러움을 폭로하면 그가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대적하고 죽이려 드는 것; 바로 이것이 외식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죄, 회개가 안 되는 죄, 이것이 외식입니다.
8. 예수님의 탄식과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예루살렘의 죄였습니다. 선생 되고 지도자 되었던 자들의 죄였습니다.
선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합니다. 선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선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9.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믿음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순간 성령님에 힘입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우리를 우상숭배적 삶에서 복음에 매인 삶,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우리 힘으로 의를 이루려는 삶에서, 예수님의 의를 증언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