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24. 막14:43-52
<붙잡혀 가시는 예수님>
1.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믿고 있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 참담한 심정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정도로 아픈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롯유다에게 배신 당하셔서 붙잡혀 가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3번의 기도가 드려지는 그 시간 가룟 유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3. 유다는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예수님을 미련없이 버립니다. 세속적 욕망을 채워줄 메시야를 기대했던 그에게, 하나님 나라를 품으신 나사렛 예수님은 전혀 다른 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
4.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3년을 함께 지냈고, 많은 기적들을 보았고, 말씀도 들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주님과의 바른 관계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욕심과 탐심을 추구했으나 자기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결국 배신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5.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유다를 막지 않으시고 입맞춤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계셨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48-49절).
6.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렇게 예수님이 체포되는 순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의 자리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장담했던 제자들이 취한 행동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50-52).
7. 여기서 “베 홑이불”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덮고자는 이불을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간 게 아닙니다. 베 홑이불이라는 것은 고급인 비싼 겉옷을 말합니다. 마가는 고난 앞에 체면까지 버리고 도망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것입니다.
8. 제자들이 공포 앞에서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결단과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연약한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9. 예수님처럼 한시라도 주님께 자신을 붙들어매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언제든 가롯 유다와 도망친 제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에 자신을 순종하셨습니다.
10. 말씀을 이루기 위해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요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기도는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