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롬6:1-14
<우리는 의의 병기입니다>
1. 그동안 살펴본 로마서의 내용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도덕주의자들과 율법주의자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이것을 로마서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2. 그 다음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3. 이것을 롬 5장 20절에서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표현합니다. 죄의 한계, 죄의 크기보다 은혜의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죄가 아무리 강하고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 모든 죄를 덮고도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4. 하지만 이 사랑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남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를 덮고도 남는다면, 우리는 계속 죄를 져도 되는 것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사랑엔 언제나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가장 위대한 것인 것 같으면서도, 왠지 약한 모습으로 비쳐집니다. 사랑으로 죄도 묵인하면 범죄를 가능해 한다는 측면에서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5. 죄를 지으면 당장 심판하고 바로 비판을 해야지, 용서하면 더 많은 죄를 범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이런 반론을 제기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다면,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죄를 다 덮고도 남는다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자’라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의와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크고 놀랍기에 우리의 그 모든 죄와 더러움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죄를 져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7.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 우리의 몸을 의로운 도구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역사를 드러내는 선한 도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8. 우리가 의의 병기가 되어야할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에대해서는 살았고, 우리가 죄에 대해 죽음으로 새생명을 누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 생명을 누리고 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9.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신 후 이제 우리의 삶을 정말 아름답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병기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죄에 대해 죽은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감을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