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인생의 내일을 알 수 있다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만반의 대비와 준비를 해서 기쁨은 배가 되게
하고, 슬픔과 비극은 방법을 찾아 미리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준비 없이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하면 너무나 당혹스럽습니다.
갑자기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힘들었을까
요? 강대국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왔는데 이유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침상에 누운 자기 처지가 얼마나 처량하게 다가왔
을까요?
인생이란 이렇듯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습니
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 항의하고 싶을 때가 많아지나 봅니다.
히스기야 왕도 병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
되는 이사야 선지자의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는 황당함을 넘어 하나님
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 같습니다. 억울함과 비통함에 전장에
서 죽이시지 뭐하러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하셨냐는 항변이 당연히 터
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병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
에 여호와의 전을 직접 찾을 수조차 없던 히스기야는 궁중의 벽을 향하
여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사38:2).
왜 그는 벽을 바라보며 기도를 시작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설명하
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처지가 넘어설 수 없는 벽과
같은 상태임을 암시할 수도 있고, 또는 하나님이 벽처럼 느껴져서 그런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사야 38장 10-20절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기도문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실한 탄원을 담은 간절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이 벽으로 다가오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
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셨습니다.
벽으로 가려진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다 듣고 계셨고, 보고 계셨던 것입니
다.
우리는 내일을 아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유약한 존재입니다.
굳이 내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올마이트한 존재도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내일을 몰라 무방비하게 눈물을 흘려도 그 눈물을 하나
님이 보시고 아시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을 뿐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어느 날에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렇게 하신 이유
가 당신의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심을 깨닫고 또 알 수 있음을 믿기 때
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