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불붙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 “네 신을
벗으라” 명령하십니다. 왜 신을 벗어야 할까요? 신발은 그리스 로마 문화군
에서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남의 신발을 신고 걸어 보지 않고 그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지 말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취직을 하려면 이력서를 써야 합니
다. 이때 ‘이’(履)는 ‘신발 리’, ‘밟을 리’ 자 입니다. 다시 말해, 이력서는 내가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 신발을 벗으라
는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하던 것, 즉 자신의 전존재를 내
려 놓으라는 말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아무리 온화한 표정을 지어도,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도, 신을 벗
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분입니다. 옳음에 대한 자기 확신, 주의 , 주장, 이데
올로기, 차별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 누
구도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빛나는 떨기나무는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힘든 시련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높으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천사가
느부갓네살의 뒤통수를 내리칩니다. 왜 그러시냐고 따져 묻지만 천사는 아
무 말이 없습니다.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된 뒤 왕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
를 내자 천사가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왕관을 쓰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
다고 생각하느냐? 지금도 자신의 왕관을 쓰고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 드리
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개념 속에 갇힐 수 없는 분입니다. “팡세”의 저자 블레스
파스칼은 치열하게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철학과 과학과 수학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
1654년 11월 23일 밤에 그는 강렬한 성령 체험을 합니다. 그토록 찾아도 만
날 수 없었던 하나님을 마침내 만난 것입니다. 그는 그날의 감동을 “내가 하
나님을 찾아 헤맬 때 숨어 버리시더니 내가 그 앞에 엎드리자 나를 품어 주
셨다” 는 말로 표현합니다. 파스칼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
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개념 속에
갇히는 분이 아닙니다. 경험을 통해 겪어야 알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신을 벗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머리 위에 씌어 있는 왕관을 벗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교리적, 지식적 하나님이 아닌 인격적 교
제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경험하여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