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23. 욥15:1-35 <2차 논쟁의 시작>
1. 욥의 고난을 둘러싼 1차 논쟁이 끝나고, 15장부터 21장까지는 두번째 논쟁이 시작됩니다. 욥은 이 무의미한 논쟁을 끝내고, 하나님과 직접 변론하고 싶어하였지만 세 친구들은 욥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2. 1차 논쟁에서 엘리바스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정죄했고, 빌닷은 '옛말에 틀린 것없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이모양이다'로 정죄했고, 소발은 '너의 고난은 죄가 원인이다'며 욥이 죄인임을 확정했습니다.
3. 그런데 가만히보면 우리가 남을 대할 때에도 우리 안에 엘리바스도 있고, 빌닷도 있고, 소발도 있습니다. 15장에서는 또 다시 엘리바스가 변론을 시작합니다. 그가 펼치는 논리는 1차 논쟁 때 주장과 동일합니다. 욥의 고난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욥에게 회개를 다시 한번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4.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엘리바스 의 어조가 좀더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욥을 더 강하게 추궁하고 질책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친구들이 처음에는 위로차 방문했다가, 다음에는 ‘고난의 의미'를 두고 건설적인 논쟁을 시작했다가 오늘부터는 ‘친구들 사이의 자존심 대결’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5. 엘리바스의 생각 안에는 하나님도 인간들을 믿지 못할 정도로 죄인인 인간을 통해서 태어난 사람 중에 의로운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14-16절) 여기까지는 엘리바스의 말이 맞습니다. 이 세상이 완전히 깨끗한 사람이 누가 있으며, 완전무결하게 의로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6. 그래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그런 죄인인 인간에게 ‘상선벌악 즉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간과한 것입니다.
7. 엘리바스는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17-35절에서 악인의 운명에 대해서 길게 설명합니다. 특히 20-24절에 악인은 두려움과 환난과 역경으로 인해서 10가지나 되는 일을 겪어야 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욥이 죄인을 넘어서 악인이라고 단정합니다.
8. 15장을 묵상하며 한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찾게 됩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대할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 주장과 자기 열심으로 대한 것'입니다. 15장을 읽다보면 엘리바스는 마치 진리의 법 앞에서, 검사의 자격을 확인하고, 죄인의 죄를 지적하고, 죄에 대해 형을 구형하는 고발하는 검사같아 보입니다.
9. 우리도 이처럼 행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심판하고 정죄하며 비난한다 고만해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마음과 내 행동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곁에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우리가 할 일은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일입니다.
10.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지쳐있고, 그 마음이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그저 공감해 주면서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 나는 사람이 있다면 위로를 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