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양 칼 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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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 깊은 배려 > - 강신균 목사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의 사려 깊은 배려를 느낄 때 감동을 받습니다.
대부분은 아주 작고 조용한 섬김일 때가 많습니다.
한 번은 사위가 작은 선물을 하나 건넨 적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계였습니다. 그것은 코털을 정리할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가
끔 거울을 보며 삐져 나온 코털이 보기 싫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어
느 날 보니 희어진 코털이 삐져 나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기
에도 민망했습니다. 아마 그 모습을 사위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
서 조용히 그 이상한 선물을 준비했던 것 입니다. 그 일에 대해 특별히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사위의 작은 배려는 저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
아 있습니다.
이처럼 사려 깊은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드러
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때 우
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공동체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바로 이런 배려가 오갈 때입니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무시하지 않고 조용히 돕고, 능력 있는 사
람이 연약한 지체를 드러내지 않고 섬겨 줄 때, 그 공동체는 참으로 은
혜로운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
다. 우리는 쉽게 자기 생각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려 깊은 배려는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됩니
다.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떨까?” 이 질문을 마음에 품을 때 비로소 진정
한 배려가 가능해집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결코 우리를 몰아붙이거나 무리하게 이끄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오래
참으시며, 부드럽게 인도하시고,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이것
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배려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는 서로를 가르치려 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
하는 데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없이 짐을 나누어 지고, 조용
히 서로를 세워 주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항상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조금
씩 더 노력한다면 서로 힘을 얻게 되고, 은혜와 평화가 넘치는 공동체
를 이루게 되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이다.
2
<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 - 정 철 목사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
은 “만일”(에이 데)라는 표현을 여섯 차례나 사용하면서 부활의 사실성
과 확실성에 대해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이라고 말하며,
만약 우리에게 부활이 없을 경우 나타날 여섯 가지 결과를 말합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헛되고,
둘째는 우리의 믿음 역시 헛것이 됩니다.
셋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사기꾼이 될 것이고,
넷째는 우리의 죄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째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어 장사된 사람들은 망하였을 것이고,
여섯째는 내세의 영생은 고사하고,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처지에 빠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전하는 모든 것,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이 다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
수님은 온 세상의 구원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어떤 탁월한 스승이나, 도덕적인 삶의 롤 모델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
닙니다. 이 땅에 많은 스승이 있고, 위대한 철학자들이 있지만, 구원자
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예수님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럴 듯 부활은
우리에게 구원자와 그분이 예수라는 절대 진리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영
생이 있다는 것, 천국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믿고 사십시오.
더 이상 절망과 좌절로 주저앉아 있지 말고,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이 있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반
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소망은 부활입니다.
3
<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여 첫 사랑을 회복하자 >
- 강신균 목사
매년 고난주간이 되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금식하기도 하고, 미
디어 금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신앙생활의 연수가 깊어질
수록 우리에게 찾아오는 가장 큰 위험은 '익숙함'입니다. 십자가라는 단
어에 더 이상 감격이 없고, 주님의 고난이 지식적인 정보로만 다가온다
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른 상태일지 모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고 하셨던
주님의 음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수고했고 인내했지만, 정작 주
님을 향한 뜨거운 가슴은 식어 있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은 우리 안에
굳어진 종교적 껍데기를 벗겨내고,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감격의 현장
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골고다의 길은 단순히 고통을 참아내신 길이 아닙
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증명하신 길입니다.
주님은 부족하고 넘어지는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 무
조건적인 고귀한 주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는 순간, 고난주간은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지는 시간으로 변하게 될 것 입니
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을 제안합니다.
▶기억하기: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용서의 기쁨이 얼마나 컸
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기: 주님보다 더 사랑했던 세상의 것들, 무뎌진 나의 마음을 정
직하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물기: 주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회복될 때까지, 나를 향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올 때까지 십자가 앞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은 주님의 아픔을 구경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이유
가 바로 '나'였음을 깨닫고, 나를 살리신 그 첫 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입
니다.
부활의 아침, 우리 모두가 식어버린 가슴이 아닌, 다시 뜨거워진 사랑의
고백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주님만을 온전히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 고백이 이번 한 주, 여러분의 심령에 끊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