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목). 마11:20-30.
<교만과 겸손>
1.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세밀한 손길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를 거절했던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과 이 땅에 오신 예수님까지 외면했습니다. 공생애 거의 대부분을 갈릴리 지역에서 보내시면서, 천국의 놀라운 비밀을 가르침과 여러 이적을 통해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인근의 고라신, 벳새다, 갈릴리 사역의 중심 지역이었던 가버나움 사람들은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2. 이들은 듣지 않았기에 죄를 깨닫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기에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임할 더 큰 심판, 더 혹독한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방 나라 사람들보다 회개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고, 더 분명한 증거들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았다면,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의 본보기로 성경에 기록되었던 두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큰 심판, 더 혹독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3. 우리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아니, 처음부터 깨닫지 않으려는 완고함으로 말씀을 막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 하고 계신 일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동의하고 삶으로 하나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 기쁨을 누리지는 못할 망정, 시기, 질투,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4. 유대인들에게 종말이란 메시야의 오심과 함께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 세계에 내려질 형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기들이 하나님이 내리실 형벌의 직접적인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숨기는 자들이라고, 지목된 스스로 슬기롭고 지혜롭다고 하는 이들은, 선두에서 메시야의 길을 훼방하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종교 권력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5.이들은 당시 존재의 가치조차 없었고, 미련한 존재로 여겨졌던 어린아이들과 비교됩니다. 이 둘을 비교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린아이는 그 존재의 가치가 부모에 의해 결정되고, 특별히 아버지에게 그 소유의 권한이 있으며, 아버지에 의해 생사여탈권이 주어졌던 시대에, 어린아이에게 있어 부모 아버지는 곧 생명이며 전부였을 것입니다.
6. 즉 어린아이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리시고 보이셨다는 것은, 물리적 의미에서 어린아이라기보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듯,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존하는 자에게라는 뜻일 것입니다.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왜곡하고, 자기 입맛대로 바꾸는 자들이 아닌, 말씀의 옷깃을 여미고, 그 의미를 날마다 무겁게 받고 깨달으며, 말씀의 요구대로 살아내려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7.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AD 1세기 당시 어린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대하듯, 오늘날은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참 안식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내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8. 주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 어깨에 짊어진 갖가지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이 회복되게 하셔서, 오늘도 내가 아닌 주님만을 의지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