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마12:38-50 묵상. <요나의 표적>
1.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 사람이 예수님께서 참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표적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으려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할 근거를 마련하려는데 있었습니다.
2.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말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2000년 전 일어난 십자가 사건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것이 사실이라면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그때 나타났던 기적이 지금 나에게, 자녀에게 나타난다면 믿겠다. 불치병이 낫고,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믿겠다.
3. 이렇게 우리는 오늘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표적을 경험하기 위해서 이 아침을 깨워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4. 그 말의 뜻은 이것입니다. 요나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일 만에 살려 니느웨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요나처럼 예수님 또한 십자가에 죽으시지만 삼일만에 살아나셔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 요나는 이미 죽은 과거의 인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계시는 메시야입니다. 요나보다 더 큰 분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믿지 않는다고 책망하십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나라 남방 여왕이 찾아와서 지혜를 들었던 것처럼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우신 예수님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꾸짖으십니다.
6.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외에 더 어떤 표적이 있어야 예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 그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고 중요합니까?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복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7. 43-45절입니다. 끊임없이 표적만을 구하며 살아가는 자는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기에 더 악한 귀신들이 찾아와 귀인이 주인이 되는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삶의 과정은 더러운 욕망과 질투와 시기와 다툼이며, 그 삶의 끝은 멸망이요, 지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 표적만을 바라는 음란하고 악한 세대의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8. 혹여나 우리는 내가 믿기 편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대로 예수님이 다 들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자는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대로 예수님이 따라와 주거나 변화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나의 모든 뜻을 맞추어 살아가는 자입니다.
9.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며 남녀노소 다르더라도 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시며 살아가기에 모두 다 한 형제 자매입니다.
10.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런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온전히 믿어지는 믿음을 주옵소서” “내 모든 기도의 제목이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어 주셔서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