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월) 민14:26-45 묵상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 1.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에게 그 땅의 정착민에 비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으로부터 그들이 우리의 먹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10명에게 들었던 보고에 의해 낙담한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고 이때에 하나님께서 회막에 나타나셨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전염병으로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용서와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용서하나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방향을 돌려 광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3.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원망했습니다. 원망은 불신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곧 하나님에 대한 멸시입니다(민14:11).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에 이스라엘 전부를 멸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지만 20세 이상으로서 하나님을 원망한 자 전부가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과 한 달 전에 20세 이상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여 총인원이 603,550명임을 파악했었는데 이제는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함으로 광야에서 다 죽을 사람들의 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어린 자녀들은 살려두고 전쟁에서 자기 보호가 가능한 60만 장정들을 죽도록 하셨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는 생과 사의 문제가 인간의 육체적 강인함에 기인되지 않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거대한 아낙 사람들 앞이라도, 거친 광야에서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현실 너머에 있는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5. 그들의 정탐 보고를 되짚어보면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1)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2) 그곳에는 막강한 토착민들이 살고 있다. 두 진술 모두 사실에 입각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신앙적 관점입니다. 그들이 파악한 사실은 불신과 두려움의 관점에 결합해 치명적인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6. 모세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자, 그제야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며 슬퍼합니다. 너무 늦은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 모세와 아론이 그들 앞에 엎드렸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까지 찢어가면서 호소했을 때 말을 들었더라면 그들은 그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소할 때는 듣지 않다가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심판의 말씀을 하시니 그제야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7. 그들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회개의 눈물이었다면 말씀을 잘 지키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어야 했는데, 그들은 후회의 눈물 한편으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반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로 가는 길로 가서 광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가 가나안족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거짓 눈물, 거짓 회개입니다.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하지만, 마음으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8. ‘내가 나의 삶을 가르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 14:28),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 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이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스러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말한 그대로 다 시행하셨습니다.
9. 말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게 나타나고 변화가 다가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도 가정에서, 이웃들에게, 믿음의 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생명의 말을 사용하며 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