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월) 롬11:13-24 <덧붙임의 은혜>.
1.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처음 복음의 시작은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점점 더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2. 이것을 보는 바울의 심정이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미 묵상했듯이 바울은 자기 민족을 위해 큰 근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구원을 미루시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이방인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저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복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이 전달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4.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박해를 하고, 결국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 한참 복음이 전파되던 때에 예루살렘에 대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사실 그 일에 앞장섰던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5. 일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긴 했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께로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에 수많은 믿는 유대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6.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박해를 받으면서 온 세계로 퍼져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방인은 예수를 믿을 수 없고, 믿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7. 12절에서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핍박합니다. 이러한 일로 믿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고, 그 결과 그들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역사입니다.
8.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게 하고, 복을 누리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9. 우리는 본래 돌감람나무였습니다. 야생감람나무라는 뜻입니다. 주인도 없는 나무였기 때문에 제멋대로 자라며 열매도 거의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참감람나무의 주인이 돌감람나무를 보면서 안타깝게 여기고 그 가지를 꺾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돌감람나무의 가지로 하여금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입니다.
10. 바울은 지금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비유하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돌감람나무는 우리 이방인들입니다. 돌감람나무인 우리는 참감람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참된 은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