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토) 렘22:10-19
<죽음의 의미>
1. 요시야와 여호와하스, 두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하겠지만, 두 사람의 죽음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요시야를 공평과 의를 행한 왕으로 평가하셨으므로 그의 죽음은 복된 죽음, 생명의 죽음이지만, 여호아하스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의 죽음이므로 저주와 멸망의 죽음입니다.
3. 한 사람의 인생이 참으로 복 있는 인생이었다고 말하려면 그의 마지막이 복된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복된 죽음은 복된 삶의 결과입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결과가 복된 죽음이 되게 합니다.
4. 13-19절을 보면 여기에 또 다른 죽음이 있습니다. 요시야의 2남으로 살룸(여호아하스)의 후임 왕이었던 여호야김의 죽음입니다. 애굽 왕 느고는 살룸(여호아하스) 대신에 그의 형인 엘리야김(여호야김, 요시야의 2남)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 왕궁을 사치스럽게 증축하는 것을 백성의 권리와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5. 그래서 왕궁 증축을 위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걷고, 임금도 주지 않은 채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백성들을 사실상의 노예 취급을 한 것입니다. 그는 죽어서 짐승처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버려지고, 단 한 사람도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자 없는 가장 무서운 심판의 죽음을 당합니다.
6. 그가 이렇게 최고의 심판의 죽음을 당할 만큼 하나님 앞에 진노를 산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왕의 권세를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7. 그는 호화로운 궁궐을 지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창을 많이 만들고(웅장한 건물),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칠을(화려한 건물) 하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걷고, 임금도 주지 않은 채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8. 이에 하나님께서 여호야김에게 백향목으로 아버지와 같은 왕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15절). 그가 살아서 부정하게 모은 돈으로 노임도 주지 않으면서 화려한 집짓기에 집착했으므로 죽은 후에는 단 한 평의 땅도 차지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적 개념으로 최고의 완전한 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9. 여호야김 왕과 예루살렘의 부유층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부분은 이 모든 것을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했다는 점입니다. (14절, 나를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10.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자들입니다(롬 14:7-8).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복음의 은혜를 따라, 힘써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