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목) 시94:1-23 <복수하시는 하나님>
1. 오늘 본문은 언제 지어졌는지 시기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기나 또는 포로에서 돌아온 후로 보기도 하고, 마카비 시대에 지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지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2. 저자가 포로기를 경험한 사람이었으면 나라 잃은 설움과 고통을 겪으며 의분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기를 겪였던 과거의 아픔을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주 중요한 믿음의 기반을 하나 고백하고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3. 저자는 하나님을 향해 의인을 압제하는 교만한 사람들에게 복수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악인들에 대해 여호와의 복수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며 (1~11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복 (12~23절) 을 말합니다.
4. 이 시는 악한 자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고백이며, 또한 정의를 드러내 달라는 호소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복수하시는 하나님” (1절)이라는 표현을 두번 사용하여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복수와 다릅니다. 그들의 복수는 감정적 격발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복수는 공의와 사랑에 따른 것입니다.
5.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공의가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도 참된 공의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해 완벽하게 계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죄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치루신 것입니다.
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수하신다는 것이,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 차원을 의미하는 말로만 읽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개인적인 원한도 하나님께서 그 원통함을 해결해 주시지만, 그러나 보복하시는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악인을 벌하시고 의로운 통치를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7. 19절을 보면 앞부분에는 먼저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인이 이렇게 많은 근심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94편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시인은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 악인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기 때문에 많은 근심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8. 그러나 시인은 근심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도 자기가 악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서도 근심이 끊이지 않는 중에도 하나님의 위안으로 오히려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9. 저자가 고백하는 94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악인들에게는 보응의 날이 되겠지만, 믿는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와 위로를 구하면서 믿음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라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10. 그러기에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에 대한 확신 표명으로 시는 마칩니다. 1절에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반복해서 말했듯이, 마지막 절에서는 ‘그들을 끊으시리라’는 말이 두번 반복됩니다. 성도들은 모든 좌절과 분노와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악한 압제자들에게 보응하실 때, 성도들을 신원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