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목) 왕상12:25-33 <여로보암이 만든 하나님>
1.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계책을 생각했습니다.
2. 그래서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세겜에 수도를 정합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지배하고 있는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을 느낍니다. 실제로 몰래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백성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했습니다.(26절 이하)
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은 특별한 곳입니다. 비록 나라가 나뉘어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 세겜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세겜에 성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거기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성전에는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예루살렘 에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분단되어 자유롭게 예루살렘을 찾을 수 없는 현실임에도 백성들 가운데는 몰래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갔고, 그리워했습니다.
5. 이런 상황을 여로보암이 눈치 챈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반란 이 일어날까 염려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예루살렘 성전에 필적할만한 강력한 정책을 펼칩니다. 우상숭배 정책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아를 하나님이라 칭합니다. (28절)
6. 인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솔로몬의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그 와중 에 어부지리로 북왕국의 왕이 된 여로보암도 북이스라엘의 멸망 을 자초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11:13절 이하를 보면 이때 많은 북왕국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북이스라엘을 탈출합니다.
7. 다수의 백성들은 여로보암의 정책에 순응했지만, 하나님 신앙을 수호하던 사람들은 남유다로 갑니다. 사실 이때는 지파 사회였기에 자기 지파를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을 개인적으로 탈출했다는 것은 자기 지파를 등지는 일입니다.
8. 그야말로 이것은 목숨을 걸고 북이스라엘을 탈출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백성들은 벧엘과 단을 찾아 금송아지 앞에 분향 합니다. 이어지는 13장을 보면 북이스라엘과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징계가 선포됩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역사의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9. 여로보암 그는 열심히 여러 가지 종교 개혁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하게 놓친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에 반복 되는 내용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에 계획하고…"입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왕을 평가하는 악한 왕의 기준이 "여로보암같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10. 우리는 어떤지 보기를 원합니다. 신앙은 “누군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가”를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그가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열심히”이전에 “하나님의 마음으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