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 23 욥7:1-21
<고통 중의 탄식>
1. 욥기를 묵상을 하면서 욥의 상황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욥과 우리도 맨날 행복하고 웃기만하고 기쁘기만 하면 좋겠는데 오늘 본문에서 욥이 당하는 극심한 고통과 절망과 탄식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은 왜 이렇게 까지 하실까 싶기도 합니다.
2. 왜 우리에게 삶의 고난과 아픔이 이같이 있어야 하며, 왜 하나님은 선하신데 세상의 악을 방관하시냐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철학을 신정론(神正論)이라 부릅니다. 신정론이란 하나님은 인간을 단련하시고,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 재난과 고난과 악도 활용하시기에 재난과 고난은 물론 악도 하나님 뜻의 일부라고 보는 이론입니다.
3. 신정론은 한마디로 모든 것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이기에 여하튼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정론의 결론이 욥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만만치 않은 고통의 무게 앞에 정답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4. 욥은 계속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짖습니다. 6:10절에서 욥이 고통 속에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음’으로 그 속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고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7장에 와서 욥은 또 다시 절망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더욱 욥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본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욥이 인간적으로 너무나 괴롭기에 가지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탄식입니다.(2, 15,16절) 욥은 계속해서 ‘죽고 싶다’ ‘죽지 못해 산다’ ‘죽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하는 말들’을 늘어 놓습니다.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6. 우리도 절망할 수 있습니다. 탄식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을 차라리 떠나고 싶고 죽고 싶기도 합니다. 욥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죽고 싶을만큼 힘든 상황 가운데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남아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7. 그것은 욥이 결단한 "시선의 변화"입니다. 7장은 1~10절과 11~21절까지 두 파트로 나뉘어 집니다. 1~10절은 모두 ‘욥의 독백’입니다. 독백의 내용은 욥이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는 시선"입니다. 그러나 ‘그런즉’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 11절부터는 욥의 시선이 달라져서 21절까지는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는 기도"의 내용으로 바뀐 것입니다.
8. 정리하면 욥은 자신의 힘든 상황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욥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넘어져도 하나님을 향해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욥과 같이 절망스러운 상황을 만나 넘어졌을 때, 하나님을 향해 넘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9. 여러분도 욥과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어 보십시오.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외로운지, 모든 것을 낱낱이 아뢰어 보십시오. 아뢰고 고백한 것만큼, 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 기계나 찬송 기계가 아닙니다. 힘든 건 힘든 거라는 하나님 앞에 탄식을 배워야 합니다. 탄식이 곧 기도입니다.
10. 그런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놀랍게 체험할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5,37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