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23 욥9:1-35 <빌닷에 대한 욥의 대답>
1. 우리는 8장에서 욥을 향한 빌닷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빌닷은 욥을 향해 "네가 100% 악인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욥 너가 의로운데 하나님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2. 그러니 조금만 더 회개하고 의로워지면 고난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회복될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에 대한 욥의 대답이 9장의 말씀입니다. 욥이 대답은 내가 과연 의로워 지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서 과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더불어 욥은 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작은 존재일 뿐이라고 고백 합니다.(10-11절) 욥은 자신에 반해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의 관점을 가지고 9장을 읽으면 이해 못할 부분이 없습니다.
4. 다만 13절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13절-"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 하겠거든" 여기 나오는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 두명이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들어갔을 때 도움을 받았던 기생 라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5. 라합이란 단어 뜻에 대해 신학자들의 의견을 압축하면 하나는 "사단, 악의 세력을 통칭하는 말" 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나안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 입니다. 이 단어는 정확한 뜻을 모르기 때문에 소리나는데로 ‘라합’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어떤 의미이든지 ‘악’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라합을 돕는 자라는 것은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6. 욥은 라합조차 감히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데,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을 상대하겠는가 반문하며,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것뿐이라는 겸손한 믿음의 말을 합니다.
7. 우리에게 고난이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고난의 이유나 성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고난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욥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도 자기에게 일어난 고난의 성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8. 그리고 언제 이 고통이 끝날 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욥에 비춰본 우리의 상황은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고난은, ‘끝이 있는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은 "길을 열어 가서 이기도록 힘을 주시는 고난"입니다.
9. 고전 10:13절에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0. 욥처럼 매일 하나님과 논쟁하셔도 괜찮을듯 합니다. 그것은 자기 신앙이 아직 건강하단 의미입니다. 아픔을 세상 방법으로 해소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아픔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면 은헤가 됩니다. 마치 사도 바울에게 가시가 기도가 되고, 기도가 감사가 되고, 감사가 기쁨이 되고, 기쁨이 자랑이 되는 길을 허락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