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23. 욥16:1-17 <헛된 위로자>
1. 오늘 본문 16장에는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욥의 반박이 시작되어 17장까지 이어집니다. 그 내용은 ‘욥의 애가’(3:1-26)를 연상한 만큼 우울한 어조를 띄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 엘리바스로부터 들은 가혹한 말들은 욥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기 때문 입니다.
2. 욥은 자신을 위로한다고 찾아온 친구들에게서 전혀 위로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상처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2절에서 자신들 에게 위로한다고 찾아온 친구들을 향하여 ‘재난을 주는 위로자’라고 까지 그 아픔을 표현합니다.
3. 사실은 친구들의 하는 말들이 욥이 모르는 것은 전혀 아니 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오랫동안 내려오는 지혜 전통, 인과응보의 교리는 욥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동안 믿어왔던 교리였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한 복판에 있는 욥에게 당장 적용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4. 사람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정답을 몰라서 주저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고 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5.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의 ‘의로움’을 은근히 과시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6. 물론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일주일째 욥의 근처에서 머물고 있는 세 친구의 자세는 높이 평가할 수 있겠지만,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위로하는 세 친구의 말에는 사랑이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7. 고전 13장에서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꾕과리 같다고 햇습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품어야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고 '재난을 주는 위로자'가 아니라 주님처럼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8. 그런 와중에서도 욥은 고백합니다. 17절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욥은 자신의 무죄함에 대해서 말합니다.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거룩을 갈망하며 살았던 모습으로 살아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9. 우리는 욥이 당하는 극심한 고통을 통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감당 하셨던 ‘수난’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요1:29). 욥기 묵상의 목적은 한사람의 지리한 고통 스토리가 아니라 그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는데 있습니다.
10 우리의 그 어떤 아픔이든 모두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슬픔을 다 품어 주시는 극진한 안아줌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받은 사랑으로 고통당하는 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 주는 공감자로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