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5(토).23. 욥20:1-29 <교만한 소발의 말>
1.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사람이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1)권력에 의한 교만 2)지적 교만 3)도덕적 교만 4)영적 교만 이라고 말합니다.
2. 그러면서 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교만이 ‘영적 교만’ 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에 대한 교만, 지적 교만, 도덕적 교만은 사람 앞에서 자기 스스로 높이는 교만인데 반해서, 영적인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교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타락한 인간은 자기의 실상을 결코 올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설사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할지라도 아담처럼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변명해 버리기 쉽상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실상입니다.
4.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말하길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야 한다. 절대자요 전능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면, 그 분을 통해서 자신을 잘 알 수가 있다”한 것입니다.
5.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영적 교만은, 바로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세 친구 들의 모습속에는 이런 영적 교만이 얼마나 큰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친구 욥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모습을 보면 영적, 율법적 교만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6. 오늘 본문은 세번째 친구 소발이 욥을 향해서 두번째 변론을 펼치는 내용으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와 빌닷이 욥과 설전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보다가 소발이 끼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발은 다른 친구들보다 분노하는 모습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7. 소발이 말을 시작한 동기가 1-2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려 했으나, 네 말을 듣고 있자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누구든 분노라는 자기감정에 휩쓸리면 바른 판단을 놓치게 됩니다. 소발이 그런 모습입니다.
8. 오늘 본문 소발의 말은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그의 말이 욥을 정죄하고, 해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21장에서 욥의 답변이 끝나고부터 22-26장 까지가 마지막 3차 변론입니다. 그런데 3차 변론에는 엘리바스 와 빌닷의 말만 나오고 소발의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9.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성경에 나오는 소발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 마지막 말이 욥을 정죄하는 것이고, 욥을 악인이라 규정하고 온갖 악담을 퍼붓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법입니다. 소발의 마지막 모습과 마지막 말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10. 유언이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말이기에 가장 진솔하고 가장 중요한 말일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설교때 말씀 드렸지만 이 땅에서의 제 생애 마지막 말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말을 무엇으로 남기길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