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월).23 욥21:1-34 <악인은 왜 형통한가?>
1. 21장은 욥과 친구들 사이에 벌어진 2차 논쟁의 결론이자, 소발의 공격에 대한 욥의 반론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을 향한 욥의 대답은 사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있는 질문에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2. 우리가 하고 싶은 질문은 "하나님은 왜 선한 자는 고생 시키시고, 또 악한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시지 않는가?"라는 것이고, 또 "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도 고난을 당하며, 왜 악인들은 더 성공하고 잘 사는가?"라는 의문입니다.
3. 욥은 어제 묵상한 소발이 주장했던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논리를 반박하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합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내가 세상을 살아보니, 소발 너의 말과는 달리 악인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도, 불행을 겪지도, 재앙을 당하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4. 게다가 의인은 더 쉽게 재앙을 당하고, 악인은 오히려 더 형통하고 더 강건하더라"는 것입니다 (7~11절). 이 이야기 는 내가 예수를 믿고, 더 정직 하고 겸손하게, 헌신하면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왜 자기만을 위해 사는자들이나, “난 하나님 필요없다!”라고 말하는 악한 자들은 잘되는가? 하는 물음과 같은 내용입니다(14-15절).
5. 욥의 말은 실제로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순간 순간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하나님은 정의롭지 않다’고,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혹은 ‘하나님은 너무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며 불평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6. 이 문제에 대해 Albert Barnes라는 신학자는 6가지 대답을 내놓습니다. 1) 하나님 은 오래 참으신다. 2)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 보여 준다. 3) 악인들에게 회개할 시간를 충분히 주신다. 4) 하나님의 자비의 풍성함을 보여준다. 5) 그의 백성을 연단하신다. 6) 하나님은 악인들의 재능을 통해서도 이 세상을 진보 시키신다. 그러나 이것은 한 신학자의 견해일뿐 모든 의믄에 대한 정답은 아닙니다.
7. 결국 욥기의 기록 목적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고난을 당하게 되는지에 대한 신앙적인 해답은 교리적, 논리적, 도덕적, 신학적 해답들도 완전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오직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 안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왜’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당하는 고난과 고통이 있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에만, 그 의미를 깨닫고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 밖에 있는 모든 것은 그저 ‘거짓’일 뿐입니다.
9. 오늘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 겪고 있는 상황과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높은 생각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22절).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겸손히 맡기고, 주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10. 하나님,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성취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고통과 고난을 이기고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날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