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화).23. 욥22:1-30 <세번째 공방전>
1. 오늘 본문인 22~27장까지는 욥과 친구들의 마지막 세번째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다시 엘리바스가 공격을 시작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마지막 변론답게 그 강도가 더욱더 강한 억측의 말을 합니다.
2. 엘리바스는 무죄함을 주장하는 욥을 비난하면서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말합니다 (1-11절). 엘리바스가 주장하는 욥의 범죄는 <가난한 자들의 재물을 착취했고, 부정한 방법 으로 땅를 획득하고, 굶주린 자들들을 외면했으며,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을 억압했다는 것>입니다.
3. 그러면서 이어지는 12절~20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엘리바스는 ‘욥의 이같은 범죄 사실들에 대해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심하게 모독하는 행위’라고 몰아 붙입니다.
4. 엘리바스는 그런 논리를 펼치며 21절부터 마지막까지 이렇게 욥을 회유합니다. "그러니 너의 고난이 멈추려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회개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큰 복을 주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4. 만약 욥기라는 배경이 없이 이 말씀만 주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한 관계가 된다면 복이 네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틀린 부분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5. 하지만 이 말에 깔린 전제는 매우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마치 욥의 손에, 인간의 손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거나, 정신을 차리거나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복음을 매우 축소하는 것입니다.
6. 여기에 하나님의 역할이 어디에 있습니까?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죄인이 회개할 수 있나요? 회개는 우리 인간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믿음과 함께 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7. 엘리바스는 하나님에 대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이런 모습을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목사인 저부터 그런 무습으로 설교만 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봅니다.
8. 우리의 큰 실수 중에 하나가 하나님에 대해, 교회에 대해, 인생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 수 없고, 은혜 아니면 구원의 은혜도 없는데 말입니다.
9. 본문을 통해 느낀 점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의 판단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그 판단과 정죄는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셔야 해!”라고 미리 규정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 그 위의 또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10. 그리고 우리 삶의 최종 판단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욥기의 마지막 42장에서 하나님은 친구들의 욥에 대한 평가,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옳지 못하다고 최종 판단해 주셨습니다. 욥을 “내 종 욥”이라 네번이나 호칭하시며 그를 변호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이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