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목).23 욥24:1-25 <하나님의 때에 대한 의심>
1. 24장 본문은 어제에 이어지는 욥의 답변입니다. 엘리바스의 세 번째 논쟁에서 23장, 24장 두장에 걸쳐 욥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욥은 23장 에서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는 성숙한 고백을 했습니다.
2.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눈을 감고 기도하면 은혜에 붙잡혔다가도, 눈을 뜨는 순간 엄습해오는 염려에 붙잡혀 하나님에 대해 의심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3. 욥에게는 자기 인생이 망가져 버린 고통 외에 또 다른 고통이 있습니다. 망해야 할 사람들이 망하지 않고, 형통해야 할 사람들이 망해가는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고통입니다. 24장에는 그런 욥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1-4절)
4. 지금 욥은 1~17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악인을 심판하지 않는지,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 같으시는지, 악인들의 형통함 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래서 욥은 1절에서 이런 탄식을 합니다.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이 말은 하나님이 공의로 세상을 통치한다고 하는데, 그 심판의 때가 보이지도 않고, 악한 자들은 여전히 형통한 것처럼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6. 욥같은 의인도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 모습은 비단 욥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더 많이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한술 더 떠서 "때와 방법과 방향과 장소"까지도 우리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7.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를 원하면서도 "시간과 상황과 열매"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순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라도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때를 산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8. 갈 4:4-5절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차매"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임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미에선 성도에게 ‘나의 때’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9. 이것을 나중에 깨달은 욥은 결국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라는 말로 자신의 무지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무지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10. 믿음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되거나 파악되지 않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할수 있는 말은 ‘하나님이 언제나 옳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옳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옳은 일의 과정입니다"는 고백 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세상이 알 수 없는 평강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