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24 막10:46-52 <간절함의 기도>
1. 본문은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란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일에 대한 증거입니다. 마침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날 때의 일이었습니다.
2. 여리고는 당시 팔레스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종려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종려나무 성읍’이라 불렸고, 겨울에 따뜻하고, 봄에 꽃들이 만발해서 헤롯대왕의 겨울 별장이 있었습니다.
3. 그렇게 아름다운 곳과 대조적인 사람, 시각장애인이자 거지이며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불행한 인생 바디매오가 있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는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4. 헬라어로 ‘바(bar)’는 ‘아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죄수 ‘바라바’ 는 ‘사람의 아들’이고,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온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가 고침받고 축복받은 인생이 된 이유에 대해 몇가지를 증거합니다.
5. 첫째는 그가 드린 믿음의 고백입니다(47절).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예수님을 무시하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그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6. 당시까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닌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고 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7. 둘째는 그의 간절함입니다 (47-48절). 우리 신앙과 삶의 여정 중 중요한 요소가 ‘간절함’입니다. 기도와 간절한 기도는 다릅니다. 사랑과 간절한 사랑은 다릅니다. 믿음과 간절한 믿음은 다릅니다. 간절함에는 무언가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8. 셋째는 주님을 따르기 위한 과감한 결단입니다(50-52절).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께로 달려 갔습니다. 당시 겉옷은 단지 외투만이 아니라, ‘이불’,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9. 즉 바디매오에게 겉옷은 그의 전 재산이었고, 자신을 보호해 주는 도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신 이상 그는 이전의 삶에 집착해서 살지 않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10.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주님을 따랐던 이유는 자기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생은 물론, 죽음 이후까지 책임져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