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월).24 막12:35-44
<가난한 과부의 헌금>
1. 오늘 본문은 주님으로 충분했던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와 함께 반대로 주님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서기관을 비교하면서 말씀하신 예루살렘의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던 서기관들이, 정작 그리스도 메시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임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3. 당시 서기관들은 발까지 내려온 세마포 복장과 “주”(主, master)나 “아버지” 라는 명예로운 칭호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모임에서 상석을 제공받는 것은 물론이요 대접받기를 당연히 여겼습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서기관들이 이런 대접과 섬김과 후원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강요하고 종용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서기관들의 "외식적인 삶" 이라고 자주 책망하셨습니다.
5. “외식”이란 ‘겉치레’를 뜻하는 말로, ‘앞에만 밝게 빛난다’는 의미입니다. 즉 전부가 아니라 드러나는 것만 좋게 보일 뿐, 속으로는 전혀 깨끗하지도 않고,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6. 서기관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는 못했던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존경 받았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간 것입니다.
7. 저는 서기관들의 외식적인 삶이 당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바로 그들의 모습이 지금 목회자들과 저의 모습임을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이러한 외식을 경고 하셨습니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40절).
8. 이어 주님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면서도 경건한 척하는 위선적인 서기관들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인물을 소개하십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당시 성전 앞 광장에는 각종 헌금을 걷는 헌금통 13개나 있었습니다.
9. 당시 화폐는 지폐가 아니라 금화 혹은 은화같은 동전 입니다. 헌금함은 딱딱한 놋쇠로 제작된 나팔 모양이었기에 동전을 넣을 때마다 땡그랑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부자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헌금양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10. 그런데 과부는 환산하면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2불이 안되는 금액을 정성스럽게 헌금합니다 (44절).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11. 주님은 지금 헌금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강도의 소굴같이 타락한 성전에서 한 사람의 정결하고, 헌신된 사람을 통해 희망을 찾으셨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같이 절망중 희망의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