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금). 민16:16-35 묵상 <구원도 무효가 될까?>
1. 온유하기로 유명한 모세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에 대하여 분노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15). 평소의 모세답지 않습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에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바 있는 모세가 격앙되어 분노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을 향하여 ‘고라 자손들의 헌물을 받지말아 달라’는 모세의 말은 실상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더라도 제사 행위를 통하여 그들을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3. 이러한 사실은 전적으로 긍휼과 자비에 의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구속 능력을 흔히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말에 담긴 제물의 무효화, 제사의 무능력이 허락된다면 죄인된 인간이 기댈 마지막 은총의 언덕은 없는 것입니다.
4. 모세는 마땅히 ‘하나님, 이들이 비록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시샘하여 반역을 꾀하더라도 이들이 주 앞에 나와 제물을 바칠 때 그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제물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했어야 옳습니다. 여기까가 지금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5. 그런데 주님의 말씀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도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 되게 한 당시 성전 질서를 엄히 꾸짖으셨습니다(마21:12~13). 게다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23:23) 책망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마24:15) 때를 종말의 때로 말씀하셨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때’란 ‘종교가 권력화되는 때’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6. 그래서 모세의 신원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는 종교가 권력과 물질에 눈이 어두우면 구원의 능력을 상실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같지않게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권력의 도구가 될 때, 십자가의 본질은 사라지고 의식만 남은 종교가 과연 구원의 선을 실현할 수 있을까? 질문해야 합니다.
7. 기독교 역사에 이런 일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종말같은 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교회가 권력과 이권에 눈이 멀고 죽은 전통에 사로잡히면 구원의 능력은 사라집니다. 오늘의 교회가 스스로 세심히 돌아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8.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라”(막12:33). 하나님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등 반역자들은 땅이 갈라져 삼키고, 250명의 분향자는 불살라 죽임으로 이를 바로 잡으셨습니다.
9. 고라당 반역은 인간의 본성적 욕망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어떻게 도전하며 그 결국이 어떠한지를 보여 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고라당 250명이 죽은 자리에 남은 놋 향로를 펴서 제단을 싸게 하여 그 사건을 후대에 교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망으로 기울어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늘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