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강도당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 사마리아인 이야기이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의 몸
을 보호하고, 의료 조치를 하고, 교통편과 함께 필요한 돈도 제공했다.
간단히 말해,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의 신체적 경제적 필요 전반을 채워
줬다. 율법교사는 이 모든 행위를 가리켜 “자비" 사역이라고 했다(37절).
우리는 이 이야기의 목적을 염두에 두어야만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훈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율법 조항은 철저히 지켜 행
하면서도 자기 이익만 챙기기에 바빴던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시고 이
웃을 향해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가르치시기 위한 비유이
다. 예수님은 오늘날 '사회 복지'라고 불리는 일을 실천한 사람을 보여
주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다.
요즘 그리스도인들도 어럽고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일에 반대하지 않
는다. 하지만 '사회 구호 활동'은 흔히 부차적인 의무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교육과 전도 사역 등에 중요예산을 편성하고 예산이 조금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마리아인 비유는 이 우선순위
를 무너뜨린다. 예수님은 자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십자
가의 은혜로 의롭게 된 성도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
신다. 이것은 누가복음 10장에만 딱 한 번 등장하는 예가 아니다. 야고
보서 2장 15-16절과 요한일서 3장 17-18절은 형제자매의 신체적. 경제
적 필요를 채우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리스도인
이라 공언하는 이들이 그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
에 거'한다 할 수 있겠는가? 자비 사역이 그리스도인 됨의 근본이라는
것은 확실하며 참된 경건의 모습이라 말씀하신다.
야고보와 사도 요한은 자비 사역을 참성도의 모습을 분별하는 시금석
으로 여기고 있다. 자비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대한 테스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성도의 교제는 형제 자매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입술과 혀가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야고보는 자비를 베푸는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믿음의 고백은 ’죽은’ 믿
음이라 규정한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자비를 실천하지 않
는 모습은 진정한 믿음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
도 가서 자비를 행하라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