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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게시물

Saeng Gil Song
2024년 5월 24일
In 일반 게시판
5.24(금).24 행10:34-48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 1.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하고 세례를 베풀어 주는 장면입니다.  2. 본문은 아주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경험했다는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직접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3. 첫째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유의 주인"으로 소개합니다(36절) 여기서 ‘만유의 주’라는 표현은 ‘모든 것의 주인’ 또 ‘모든 사람의 주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예수님이 단지 말씀을 잘 가르치는 유명한 랍비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4.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진짜 정체를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이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5.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내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중심성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과 내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할 때 내 인생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6. 둘째 베드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으로 소개 합니다(39-41절). 셋째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소개합니다(42절). 7. 마지막 넷째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저를 믿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으로 소개 합니다(43절).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들의 삶과 이 세상 모든 것을 바꾸게 됩니다. 8. 놀라운 일은 베드로가 이 설교를 할 때 성령님이 모두에게 임재한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을 들은 모든 이가 성령을 경험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9. 고넬료 일행에게는 베드로와의 만남은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만난 예수를 통해 그들은 세상의 허망한 옛 삶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생명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0. 복음을 알게 되고,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된 고넬료의 감사와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변화된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님을 향한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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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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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목).24 행10:17-33 <하나님의 열심> 1. 베드로가 룻다에 가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치고, 욥바에 가서 죽은 다비다를 살린 소문이 퍼지자 샤론 평야 일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2.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가죽공 시몬의 집에서 계속 머물면서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가죽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3. 레11:39-40에 의하면 짐승의 사체를 만지거나 먹는 자나 주검을 옮기는 자는 부정합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가죽을 다루는 자들은 부정한 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4. 그런데도 베드로가 그곳에 머물면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의 전도에 사용하시기 위하여 준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그런데 베드로가 시몬의 집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시려는 계획 속에 팔레스틴이라는 경계를 넘어 본격적으로 복음의 씨를 뿌리려고 베드로와 고넬료를 연결시키십니다. 6. 사울의 회심에 아나니아를 붙여주시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빌립을 붙여주신 것처럼, 이방인을 상징하는 고넬료에게 유대인을 상징하는 베드로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7. 지금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시몬의 집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욥바는 요나가 니느웨에게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정반대인 서쪽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타러 온 항구도시입니다. 8.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 싫어 도망 온 곳이 욥바인데,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불러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9.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폭풍우를 불게 하여 요나와 함께 있던 이방인들을 불안하게 했으나, 이제 베드로를 통하여 성령의 바람을 이방인들에게 불게 함으로 구원의 복음,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10.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진심의 도구들입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령의 전령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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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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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수).24 행10:1-16 <경건한 이방인 고넬료> 1. 사도행전의 3대 사건을 들자면 "교회의 탄생, 사울의 회심,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임한 성령의 사건"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만큼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2. 고넬료의 이름은 '코넬리우스'이고 '코넬 대학'이 그 이름을 딴 것입니다. 고넬료의 믿음이 어떤 했기에 그런 대단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3. 하나님은 많고 많은 이방인중에 왜 하필 고넬료를 택해서 전세계로 복음이 전해진 문이 열리게 하셨을까요? 그가 하나님도 인정하실만한 "경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절) 4. "경건의 사람"이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사람"입니다. 5. 또한 경건한 사람이란 "진실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4절) 성경은 하나님께서 진실한 기도와 행위를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신다고 증언합니다. 욕망의 기도와 진실한 기도는 크게 다른 것입니다. 6.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는 주변인들에게 비난과 의심의 대상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주님 앞에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을 뿐더러 기억하신 바가 되었습니다. 천사를 통해 이 사실을 들은 고넬료에게 이것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7.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삶을 온전히 받으시며 기억하신다는 소식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고넬료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갈등과 고민, 수고와 눈물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고, 고넬료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8.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의 삶을 기억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도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눈물과 사랑을 기억하십니다. 9.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의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일은 계산적인 신앙이 아니라, 절대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맡기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이 하신다" 라고 했습니다. 10. 하나님은 세상의 한 구석에서 바른 신앙의 삶을 위해 때론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당신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질없는 것 같은 우리 믿음의 수고도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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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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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화).24 행9:32-43 <애니아와 다비다> 1.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1장부터 베드로를 중심으로 복음 전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그러다가 잠시 스데반과 성도들을 박해한 사울과 그의 회심에 대한 기록이 나왔다가, 다시 오늘부터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이야기가 12장까지 나옵니다. 3. 그리고 13장부터는 바울을 중심으로 한 선교 이야기가 끝까지 기록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에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베드로는 무슨 일을 행하고 있었는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4.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 변화될 때에 베드로는 룻다에 사는 성도들을 찾아갑니다. 5. 베드로가 왜 룻다로 갔는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중풍병에 걸린 애니아를 고쳐주는 사건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인도와 역사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6. 애니아라는 여인이 겪는 8년의 중풍병이란 고통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애써도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는 중풍병같은 현실에 매여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7. 이를 본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고 선포합니다 (34절). 베드로는 그가 애니아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애니아를 치유하신다고 말했습니다. 8. 베드로가 애니아를 고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의 병이 낫도록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기적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9. 기도에는 능력이 있고, 기도하는 자의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때로 힘든 이들의 아픔을 보며, 그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을 때,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기도입니다. 10.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가장 확실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내 손에 있는 상황과 문제 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다시 찾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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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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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월) 행19b-31 <박해자에서 박해받는 자로> 1. 행9장 앞부분은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장면 이었습니다. 예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만나는 사건을 통해서 사울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그 이후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증언합니다. 미신과 신앙의 차이점은, 미신은 자기 노력으로 신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신앙은 예수를 통해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은 사울이 주님을 향한 적대심을 품고 있었던 때에 먼저 찾아오셔서, 사울의 마음을 180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회심은 언제나 "인간의 의지"가 아닌, 주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기초합니다. 4. 그리고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 '여러 날'이라고 표현된 3년의 긴 세월을 아라비아 광야에서 지냅니다. 회심후에 권력과 힘의 상징인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광야행을 택합니다. 이는 삶의 목표를 오직 하나님께만 고정시키려는 애씀으로 봐야 합니다. 5. 우리의 올바른 믿음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내게는 씻을 죄성이 너무 많구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자기 무능과 연약함을 자인할 때, 비로서 더욱 의지할 분은 예수밖에 없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6. 본문에 나온 바울의 아라비아 광야는 주님만을 의지함이 더욱 강화된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실 때 때론 외로움, 고독함, 불편함을 통해 광야에 머물게 하시기도 합니다. 7. 다윗처럼, 바울처럼 광야애서 힘들 때 낮은 탄식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외치며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21절) . 8. 오늘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 십니까? 사울에게까지 찾아오신 예수가 바로 우리 삶의 자리에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습니까? 탄식, 슬픔, 눈물의 자리까지 친히 나에게 찾아오시는 분이 예수이십니다. 9. 유대인들은 사울의 변화에 당혹해했고, 핍박받던 성도들은 혹시 속임수는 아닌가 하여 바울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의 사울에 대한 보증과 사울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교회는 안정을 찾아갑니다(31절). 10. 하나님, 처음 예수 만난 사울에게 주를 향한 열정이 불타올랐듯이, 우리의 가슴도 주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고백하고 증언하던 그 열정이 우리 안에도 불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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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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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주).24 행9:1-19a <바울의 회심> 1. 사도행전은 "예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를 만나 삶이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 행8장에서 빌립집사가 전도한 에디오피아 왕의 내시는 돌아가는 길에 기쁨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한사람으로 인해 한나라에 복음이 전해지고 coptic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3. 본문에도 예수를 핍박하던 한 청년의 회심이야기가 나옵니다. 회심이란 '회개하는 마음'이란 뜻이 아니고, '마음을 고친다'는 뜻입니다. 4. 우리가 경험하는 회심에는 <급진적 회심>과 <점진적 회심>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으냐에 답은 없지만, 회심은 예수를 만나는 사건부터 시작되는 '마음 고치기', 그리고 '삶 고치기'입니다. 5. '회심'이 없이는 '거듭남'이 없고, 거듭남이 없으면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하늘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내 마음을 바르게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6. 사울은 회심하기전에 쓰던 바울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한국식 이름과 영어 이름 2개를 가진 것과 같습니다. 바울의 경우 회심을 통해 그토록 열심이던 이전 삶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며 변화의 증거로 바울을 쓴 것입니다. 7. 여러분은 예수를 믿은 후 삶의 목적이 바뀌셨습니까? 바울처럼 예수 앞에 '주여 뉘시오니까?",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두가지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8. 신앙 생활의 장벽이 있다면 3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해가 안됨, 인간이 이해가 안됨, 고난이 이해가 안됨>입니다. 하나님은 이 난제를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난관으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9. 3가지 난제를 넘어서려면 내 눈에 비늘이 벗겨져야 합니다(18절). 본문에만 "다시 본다"는 단어가 3번이나 등장합니다. 성경은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기 전까지 '비늘같은 것'이 덮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비늘이란 자기 생각, 자기 경험, 자기 지식으로 세상과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관점입니다. 10. 바울은 이후에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어 고난도 능히 극복하게 됩니다. 우리 기도 중에 "주님. 내 눈에 비늘이 벗겨져서 하나님을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소서" 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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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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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토).24 행8:26-40 <빌립 집사와 내시 이야기> 1. 51년간이나 중국선교에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그의 선교 사역의 결론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이다" 2. 그런 면에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면서 동시에 '사람행전' 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역사'를 소개하는 사건마다 '성령의 사람들'의 이름도 함께 소개합니다. 3. 스데반이 '순교자'였다면, 빌립 집사는 '전도자'였습니다. 성경은 그를 교회 안에서는 '참 좋은 봉사자' 로, 기독교로는 '최초의 '전도자'로, 가정에서는 '훌륭한 믿음의 아버지'로 소개합니다. 4. 우리가 빌립 집사를 본받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6절). 우리가 '사람의 소리'에 민감하면 낙심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면 '절대적 소망'이 찾아 옵니다. 5. 또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종은 쉬운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순종을 잘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이해시키고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6. 성령은 빌립집사에게 광야로 가라 하셨습니다. 이에 빌립은 따지지도 않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셨 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7. 순종의 그 길이 비록 광야길 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에디오피아라는 한 나라에 복음을 심으십니다. 순종은 "상황, 시간, 관계, 사역"을 인정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고부터는 다음 일은 걱정 안하는 것이 믿음 입니다. 8. 빌립이 달려가 만난 사람은 에디오피아 관료이자 내시인 사람이었습니다. 참고적으로 당시 에디오피아는 현재의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가 아니라, 현재의 ‘수단’이라는 나라라고 볼 수 있으며, 구약에서는 ‘구스’라 불리웠고 함의 자손들의 나라로 추측 합니다. 9. 본문은 내시가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말씀을 읽고 있는 모습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성경을 읽는다"는 표현을 4번이나 반복하면서 말입니다. 10. 우리도 '복음을 갈망하는 마음', '진리에 대한 목마름',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안에 있는 기쁨'을 체험 하고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빌립 집사처럼 "신사도행전"의 한 구절에 우리 각자의 이름이 쓰여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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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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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금).24 행8:9-25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 1. 오늘 본문에는 두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시몬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사마리아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 입니다. 2. 그런데 중요성을 생각할 때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을 받았다는 내용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몬이란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형태입니다. 3..이것은 이방사람들로 취급받았던 사마리아도 복음을 받았다는 것 이상으로, 마술사 시몬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교훈이 크기 때문입 니다. 4. 사마리아인들은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하기 전에 ‘시몬’이라는 마술사에게 현혹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불의에 매인 마술사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5. 마술사 시몬에게 현혹된 사람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시몬을 따랐습니다(10절). 6. 사마리아 성내의 거의 모든 사람이 마술에 현혹되어 그가 행하는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고 따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7. 그것은 사탄에게 휘둘리는 미혹의 대상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인 우리까지를 포함합니다. 또한 미혹과 시험을 스스로의 지혜로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8. 이런 곳인 사마리아 땅에 빌립이 전한 복음과 성령의 역사는 놀라운 일들을 일어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본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을 주고 성령을 사려고 합니다. 9. 영적인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성직 매매’ 라는 단어가 영어로 ‘시모니 (simony)’ 입니다. 돈으로 성직을 사려 했던 이 마술사 시몬에게서 나온 단어입니다. 10. 우리가 가질 중요한 기도제목중 하나가 "진정성과 분별력"입니다. 믿되 진짜 믿어야하고 많은 징조중에 복음의 비밀과 영광을 선명하고 보며,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말입니다. 그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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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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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목).24 행7:54-8:8 <스데반의 순교> 1. 오늘 본문은 스데반의 순교 장면입니다. 왜 성경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는 달리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2. 스데반의 죽음과 믿음의 삶을 "우리 삶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순교가 주는 교훈 *첫째는 죽는 순간까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라 는 의미입니다(55절). 3. 신약 성경에서 "하늘을 우러러"란 단어를 기도하는 모습에 적용시킨 경우는 "예수님과 스데반" 뿐입니다. 땅만 보고, 땅의 것만 마음에 두고 사는 우리가 기도해야할 이유입니다. 4. *둘째는 우리가 살면서 "하늘의 영광과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56절). 스데반이 가장 보고 싶어했던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스데반에게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5. 행6-7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정확히 이름이 기록된 인물은 "스데반과 바울이 되는 사울"뿐입니다. 한사람은 <복음의 전달자>이고, 한사람은 <복음의 계승자>이기 때문입니다. 6. 스데반의 목숨 건 설교는 아무도 변화시키지 못한 무능력한 설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 설교 장면을, 순교 장면을 다 목도한 바울이 있었습니다. 7. 물론 바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이 천사같은 모습으로 설교하는 장면과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그의 변화를 촉발시켰던 것입니다. 8. 하나님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초기교회 사람들을, 더 넓은 세상 으로 흩으시며, 선교하는 일을 시작 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의 방법은 순탄한 길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 길에 순종하자면 아프고, 슬프고, 쉽게 감당키 어려운 순간들도 만나게 됩니다. 9. 행8:1절에는 이 상황을 "큰 핍박, 큰 슬픔, 큰 울음"이라고 까지 표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앞을 볼수 없는 어둠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한 일에 큰 역사에 열심을 내십니다. 10. 우리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오늘도 스데반 처럼, 우리를 보면 예수님이 생각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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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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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수).24 행7:37-53 <광야 교회> 1. 우리가 계속 묵상하고 있는 행7장 말씀은 스데반의 긴 설교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설교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순교를 당합니다. 2. 그 설교중 아주 감동되는 단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38절 "광야 교회"입니다. 성경에는 "광야교회" 라는 말이 이곳에 한번 나옵니다. 3. 교회의 원형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의 "광야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훈련되고, 준비되던 곳이 바로 광야이자 교회였습니다. 4. 스데반이 광야을 교회라고 말한 이유는 "성막과 훈련"이 있기 때문 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훈련"은 언약의 백성들이 거룩해지는 과정입니다. 5.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일년중에 대속죄일 하루 였습니다. 그것도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6.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하나님의 집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지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집 문을 부숴버린 것입니다. 7. 이제는 일년에 한번씩 문을 열어 너희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365일 언제든지 내가 만나 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휘장이 찢어진 사건입니다. 8. 그래서 이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히브리서 10:20절 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9. 예전에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는데, 이제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설명이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성전을 하나님처럼 생각했는데, 이제는 성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하니 스데반을 죽인 것입니다. 10. 광야 교회는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광야와 같다면, 우리는 죄악된 과거에서부터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 11. 그 거룩을 지켜나가는 동안 때론 고난, 때론 모진 바람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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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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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화).24 행7:17-36 <스데반과 모세> 1. 오늘 본문은 스데반의 긴 설교중 모세에 대해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고소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2. 모세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5백년 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 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3. 이를 통해 스데반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참된 성전이란 인간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4. 즉 설교의 핵심은 ‘너희가 절대적인 것이라 믿고 있는 것들 (성전, 율법)로 인해 하나님의 본심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5.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의 뜻으로 오신 참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게 되었다". 그 예수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온전한 성전이시자, 율법의 완성이시다.’고 설교한 것입니다. 6.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과 전통과 관습에 갇혀서 정작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7. 우리 역시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전통과 제도로 인해 예수와 상관없는 일들을 많이 하곤 합니다. 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믜 뜻을 거부함으로 인해 40년이라는 시간을 척박한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9. 우리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나서 겨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10. 오늘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이루어 가실 큰 계획을 믿고, 눈뜨고, 인정하고, 온전히 맡기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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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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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월).24 행7:1-16 <스데반의 마지막 설교> 1. 본문은 스데반 집사가 순교 전 마지막으로 전한 설교입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여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2. 스데반은 두가지 혐의로 고발 당했습니다. 첫째는 성전을 모독하고 율법을 훼손했다는 것, 둘째는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었 습니다. 이 죄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받은 혐의와 똑같은 것입니다. 3. 그런데 놀랍게도 스데반은 공의회 앞에서 이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시작합니다. 7장 전체에서, 스데반의 설교가 2절부터 50절까지 나옵니다. 아주 긴 메시지입니다. 4. 그의 설교가 특별한 이유는 구약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39권의 방대한 분량을 단 50절로 압축, 요약하여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핵심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 스데반은 지금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구약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선포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그는 정말 성령과 권능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이었습니다. 6. 스데반의 설교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의 핵심은 언약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을 따라 살았습니다. 7.스데반은 예수님의 구원 사건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점을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8. 스데반의 설교는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낸 것 이었습니다. 율법과 성전에 매여있던 유대인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9. 아브라함부터 요셉에 이르기 까지의 삶의 여정의 주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셨듯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언제나 성취하시는 분이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0.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신앙관에 매여있을 때 스데반은 복음을 온전히 깨닫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령을 통해 복음의 은혜를 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와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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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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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주).24 행6:1-15 <일곱 집사와 스데반> 1. 오늘 본문은 원형교회가 일꾼인 일곱집사를 처음으로 세우는 이야기 입니다. 일곱집사를 세우게된 배경은 더 효율적으로 사역을 잘하기 위해서 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는 문제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였음이 중요한 점입니다. 2. 사람들은 '문제없는 교회'를 찾아 방황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문제없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가 생길때 복음적 본질로 그 갈등을 극복하려 하는지, 아니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는지가 다를 뿐입니다. 3. 사도들은 교회의 문제가 생긴 원인이 그동안 해왔던 '사역들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음을 발견합니다. (2절-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4. 즉 교회의 갈등은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의 방법을 놓고 대립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 사역에서 소외된 헬라파 유대인들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은 것입니다. 5. 이에 교회는 말씀을 따르고 성령충만한 칭찬받을 일꾼을 뽑아 구제를 맡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뽑힌 7집사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 들이 자기 희생을 통해 교회의 리더들을 세우고 순종하려 먼저 희생 했습니다. 6. '원형교회의 위대함'이 이것 입니다. 세상의 방법과 다른 해결책 을 가진 것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응원했고, 배려했고, 또 복종 했습니다. 그리고 소수는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특권이 아닌 믿음으로 보답했습니다. 7. 그 결과가 7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지고, 제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믿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것이 <성장과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행하고, 믿음의 선한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공동체가 됨이 진정한 부흥과 성장입니다. 8. 성경은 세상의 흐름을 바꾼 사람들이 '지식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일곱집사 가운데 스데반을 두고 한 말입니다. 스데반은 '면류관'이란 뜻입니다. 9. 스테파노, 영어로는 스티븐 입니다. 성경은 그를 '최초의 순교자' 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를 '하나님 일하심의 증거가 나타난 사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10. 그는 '하늘의 지혜'와 '은혜'와 '믿음'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의미 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삶과 죽음의 모습 가운데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그가 부러운 이유가 예수님이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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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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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토).24 행5:27-4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1.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 "하루를 살아도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기 원합니다"는 베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2.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을 "내 이름을 위하여"가 아닌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겠다는 목적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3. 본문은 기적 같은 은혜로 감옥에서 벗어난 사도들이 다시 잡혀 갑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들 앞에서 다시 심문을 받게 됩니다. 4.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심문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너희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도대체 왜 예루살렘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다니며 예수 죽인 죄를 우리에게 뒤집에 씌우려 하느냐?" 입니다(27-28절). 5. 이때 베드로와 사도들은 아주 담대히 대답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29절) 6. 사도들의 핵심 인생관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반면 종교지도자들의 인생관은 하나님은 상관없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힘을 이용해서 자기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7. 기독교 미래학자 레너드 스윗 박사가 오늘의 교회를 가리켜 중환자라고 진단했습니다. 그 병명은 '예수 결핍 장애증(JDD: Jesus Deficit Disorder)'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예수’가 없고, '성도' 안에 '예수'가 없는 병입니다. 8.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성공하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잘 되기 위해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과 그 복음을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9. 묵상을 하면서 가슴을 때리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41절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10. 초기 교회가 짐승에게 찢기면서도 함께 모여 손을 잡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화형당하면서도 끝내 주를 부인하지 않을수 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고통보다 더 큰 소망, 고난보다 더 큰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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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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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금).24 행5:12-26 <영향력이 커진 교회> 1.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교회가 <외면적 성장>만 있을 때 생기는 위기였습니다. 교회든 성도든 <외면과 내면이 함께 성장하고 부흥>해야 합니다. 2. 교회의 진짜 성장과 부흥의 지표는 '고난 앞에서의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원형교회는 처음 겪은 공동체의 위기를 겪으며 자신들을 더욱 말씀 위에 세우려고 합니다(12절). 3. 12절에 나오는 ‘솔로몬 행각’은 그 당시 랍비들이 사람들을 가르쳐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으로 성전 동편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큰 공간에 모여 한마음으로 말씀을 배운 것입니다. 4. 그 사건 이후에 교회는 두 부류로 나뉘어 졌습니다. 한편은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더 나아간 사람들이 되었고, 또 한편은 무서워서 안 믿겠다고 하며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입니다(13절). 5. 우리도 교회를 다니는 게 전부가 아니라, 제대로 다니고 제대로 믿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척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제대로 믿어야 함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그렇게 더욱 말씀을 붙잡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그 다음으로 한것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썼습니다(15절). 우리 이민자들을 보면 "깊은 상처와 말 못할 사연과 억울함 투성이 인생"인것 같습니다. 7. 그만큼 고달픈 삶을 살아갑니다. 어느 분이 중병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교회 안에서 그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각이 안나더라는 말을 듣고 참 슬펐습니다. 8.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와 서로의 사랑으로 영혼과 몸이 치유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한 마음되어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눌수있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9. 예수를 구주로 믿는 교회 안에는 여전히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6절에 “병든 사람”은 육신의 문제로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16절에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은 영혼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10. 우리가 가진 문제가 육체의 문제이든지, 마음 속 영혼의 문제이든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고치시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은혜의 자리로 오십시오. 치료자 예수님께서 반드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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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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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목).24 행4:32-5:11 <아나니아와 삽비라> 1. 오늘 본문은 매우 대조적인 두 사건이 대비되어 등장합니다. 교회가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고 돌보고 껴안는 모습이 4장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2. 서로를 돌보고 자기 것을 다 내어서 없는 자들을 돌보는 사랑이 보이는 이 일에 주도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3. 그러나 5장으로 가면 교회안에 매우 엄격한 기강이 세워지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아무도 함부로 자기를 드러내거나 떠들지 못하도록 영적 질서가 세워집니다. 4. 그중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일입니다. 저들은 재산을 팔아 공동체를 위해 좋은 일을 하려다가, 재산의 일부를 감춘 일로 거짓말을 해서 죽은 어찌보면 황당한 사건입니다. 5. 이 사건의 의미는 '헌금을 떼먹으면 벌받는다'. 혹은 '거짓말을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4장 말미에 바나바가 소개된 직후 일어난 일입니다. 6. 바나바는 초기원형교회에서 완벽할 정도로 칭송받던 공헌자 입니다. 실상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탐했던 것은 재물이 아니라 바나바 에게 쏟아지는 칭송을 질투한 것 이며, 바나바를 향한 영광을 탐한 죄를 저지른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7. 헌금은 조금 덜 낼수도 있고, 사정상 못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헌금가지고 사람을 죽일 정도로 째째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처음교회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양육과 기대와 기준이 어디에 있나를 살펴봐야 합니다. 8. 바나바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신앙의 기준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 신앙의 기준인 사람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조심하라 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9. 우리가 탐욕에 눈을 두면 '영원한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지배당하면 '구원과 내 영혼'을 팔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싫어하시며 우리에게 조심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10. 스스로 현대판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은 신앙에 물들어 있지는 않는가 돌아볼 일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정직과 순결', 그리고 '탐욕과 질투로 부터의 자유', 모든 일에 '내가 기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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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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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수).24 행4:13-31 <변화된 자의 담대한 선포> 1. 여러분은 예수님의 12제자중 누구를 닮았으며, 또 닮기를 원합니까? 저는 굳이 대답하자면 베드로입니다. 그의 성령체험후 보인 담대함때문입니다. 2. 그런데 요즘같은 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아야 믿는 도마나, 매사가 신중하고 치밀한 이해타산에 밝은 빌립이 환영받기도 할 것 같습니다. 3. 물론 각자의 사명이 다르지만 성경은 가장 극적인 변화의 모습이 베드로에게 있음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물론이고 사도행전에서도 다른 제자들보다도 베드로의 행적과 믿음에 대해 많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베드로가 어떻게 변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바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그를 겁쟁이 쫄보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는 사도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5. 13절을 보니 그들이 상황의 공포 앞에 "담대하게 말했다" 합니다. 그들이 달라진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변한 사람들이 주역이 된 것입니다. 6. 그들이 달라진 이유는 첫째 그즐은 예수가 함께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3절). 산헤드린 공회가 베드로의 설교에 반박하지 못함은, 논리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7. 우리 모두 "진리가 주는 용기", "복음이 주는 권세", "예수가 함께하시는 능력"으로 담대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들이 담대할수 있는 이유의 또하나는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21절). 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성경에 400번 이상이나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만사가 잘될 때만 쓰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실패와 역경. 고난의 현장에서도 쓰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순간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9. 본문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베드로와 요한이 풀려난후 공동체로 돌아가 기도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23-24절).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기도하며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10. 그들은 결코 ‘이 상황을 피하게 해주옵소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살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주옵소서.’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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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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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24 행4:1-12 <오직 예수 외에는 없다> 1.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 후에, 수없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관심은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들에 의한 핍박으로 연결됩니다. 2.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요,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전했다는 명목으로, 부활을 믿지않는 사두개인들에 의해 베드로와 요한은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2-3절). 3.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둔 것과 같이 세상은 주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어떻게 든지 막으려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 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가둘 수 없습니다. 복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4. 지금도 복음을 막으려 하는 중동 국가들, 북한, 중국, 이슬람 국가, 공산당 국가 속에서도 수많은 순교자들과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은 전파되고 있습니다. 5. 복음 증거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연약해도 복음은 강합니다. 우리는 무능해도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담대하게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전파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과 함께 역사할 것입니다. 6. 우리가 사는 시대를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해서 생긴 종교다원주의가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절대종교를 부정합니다. 구원도 여러갈래 길과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7. 기독교를 그리스도 중심에서 주변의 여러 신들까지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12절에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당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무리 앞에서 당당히 선포합니다. 8."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없나니 오직 구원은 예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진리는 희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부르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구원을 받습니다. 9. 오늘의 시대적 상황은 우리에게 더 간절한 믿음을 요구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더욱 확실히 살아가십시다. 예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예수 믿는것 때문에 아픔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10. 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단 하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인하여 오늘도 승리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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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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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월).24 행3:1-26 <첫 기적> 1. 행3장은 교회가 시작된 후 처음 일어난 기적 사건과 베드로의 두번째 설교 내용입니다. 첫 메시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사역의 원리와 본질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후 처음 하신 일이 축복해주신 일 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 후 첫 기적을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입니다. <축복과 전환>이 성도의 특권과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3. 오늘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된 기적도 교회의 본질을 말합니다. 주저앉아 있던 인생도 "예수의 이름"이 가진 능력으로 능히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6절) 4.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상황.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없는 현실, 막막하고 두려운 삶의 굴레에서 주저앉은 인생도 은과 금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능히 일어설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5. 베드로와 요한은 '걸인에게 '너 동전 한 잎 받고 그대로 살래?' 아니면 '예수의 이름을 받을래?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걸인은 당연히 동전을 받겠다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6. 대신 베드로는 선포합니다. "너의 인생을 바꾸는 일은 동전이 아니라 구원자 되신 예수야". 예수의 이름은 단지 육체만 살리지 않습니다. 영혼까지 살리기 때문입니다. 7. 본문은 또한 기적이 일어난 때가 분명히 기도할 때였음을 말합니다. (1절)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더 가벼운 짐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더 강한 등을 위해 기도합시다" 8. 이어지는 11절이하의 본문은 베드로의 2번째 설교입니다. 그 설교의 주된 메시지는 "예수믿는 사람의 자랑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자신이 가진 신앙의 특별한 능력이나 힘을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9. 그런데 그의 메세지를 보면 온통 <예수 자랑>뿐입니다. (13-17절). "우리가 예수가 행한 일에 증인이라". (15절) 신앙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기 <나의 자랑거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이전에 가졌던 <세상의 자랑거리>는 감추고, 이전에 자랑하지 않았던 <예수 믿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나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 예수이고, 나를 통해 읽혀지는 것이 진정한 나의 자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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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4년 5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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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주일).24 행2:37-47 <우리가 어찌 할꼬?> 1. 베드로는 천대받은 직업과 지역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의 첫설교는 권위가 있었고, 담대했으며 엄숙 했습니다. 청중들은 이 말씀에 마음이 찔렸다는 반응을 보입니다.(37절) 2. "찔리다"는 헬라어로 "카타뉘소" 라고 하는데, 땅에 말발굽이 움푹 파이다는 뜻입니다. 짧은 설교이지만 그 정도로 영적인 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3. 이 말씀을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우리가 이제 어찌할꼬'라는 탄식 이었습니다. 말씀은 '평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4. 우리 시대에 설교자나 청중이나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붙잡고 '내가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고 씨름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어졌습니다. 5. 현대 교회의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가 이제 어찌할꼬"라는 자성과 탄식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유도 큽니다. 6. 앤서니 드 멜로라는 영성신학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채 태어나서, 잠든채 살며, 잠속에서 혼인하고, 잠속에서 자녀낳고, 깨어나 본적이라고는 없이 잠속에서 죽어간다"며 영적인 잠에 취한 현대인들을 질타했습니다. 7.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시는 일'은 우리에게 복입니다. 말씀으로 '마음에 찔림을 받는 것'은 은혜입니다. 말씀을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8. 흔히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중 예수의 제자로 결단한 사람의 숫자가 3천명이나 된 일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회개한 것'입니다. '세례받기'를 결단한 것입니다. 9. 누가는 회개와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헬라어 "푸쉬케"라는 구별된 단어를 처음 사용해서 부릅니다. 41절에 신도라고 번역된 단어입니다. "살아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3천명이 다 제자가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사도 바울의 선교현장에서 드러납니다. 10. '신도가 우리의 최종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진리와 변화에 합당한 삶'을 사는 <제자>가 최종 모습입니다. 주 안에서 내 자아가 매일 죽고 복음과 진리로 다시 살아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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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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