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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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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수) 롬6:15-23 <죄의 종, 의의 종> 1. 모든 인간들은 무엇인가에 얽매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에 얽매어 살아가고, 또는 관계에 얽매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념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또 명예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목표성취나 성공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좋을 수 있습니다. 2. 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그것이 우리를 종으로 만들고,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3. 사도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길은 어떤 것에 종이 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7-18절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전에는 죄의 종이었는데, 지금은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지면서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4.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5절에서는 그것을 ‘은혜 아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힘은 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죄의 권세는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힘에 의해, 은혜의 원리에 의해 지배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5. 우리의 주인은 죄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이자 영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죄의 종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16절) 6. 우리가 우리 자신을 누구에게 드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복적으로 죄의 종이 되려고 하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자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7. 우리가 자꾸 죄의 종이 되어 그에게 복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의란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8. 의의 종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믿음의 고백 위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결코 죄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하지 마십시오. 죄는 우리의 삶을 허물어 버립니다. 의의 종이 되십시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9. 주님. 죄로 인해 죽은 우리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 영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의 감격도 잠시 고단한 현실을 마주하여, 의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얼마나 많이 포기했는지 모릅니다. 사울처럼 핑계하며 육체의 일에 분주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 아래 자신을 던졌던 다윗처럼 살아가게 하옵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고, 바울과 다윗처럼 주님과 함께 영원한 이력을 써내려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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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6월 06일
In 일반 게시판
6.6(화) 롬6:1-14 <우리는 의의 병기입니다> 1. 그동안 살펴본 로마서의 내용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도덕주의자들과 율법주의자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이것을 로마서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2. 그 다음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3. 이것을 롬 5장 20절에서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표현합니다. 죄의 한계, 죄의 크기보다 은혜의 크기가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죄가 아무리 강하고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 모든 죄를 덮고도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4. 하지만 이 사랑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남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를 덮고도 남는다면, 우리는 계속 죄를 져도 되는 것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사랑엔 언제나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가장 위대한 것인 것 같으면서도, 왠지 약한 모습으로 비쳐집니다. 사랑으로 죄도 묵인하면 범죄를 가능해 한다는 측면에서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5. 죄를 지으면 당장 심판하고 바로 비판을 해야지, 용서하면 더 많은 죄를 범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이런 반론을 제기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다면,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죄를 다 덮고도 남는다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자’라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의와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크고 놀랍기에 우리의 그 모든 죄와 더러움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죄를 져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7.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 우리의 몸을 의로운 도구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역사를 드러내는 선한 도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8. 우리가 의의 병기가 되어야할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에대해서는 살았고, 우리가 죄에 대해 죽음으로 새생명을 누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 생명을 누리고 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9.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신 후 이제 우리의 삶을 정말 아름답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병기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죄에 대해 죽은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아감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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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6월 05일
In 일반 게시판
6.5(월) 롬5:12-21 <한 사람 덕분에> 1. 오늘 본문은 우리를 ‘인생에서 꼭 물어야 할 구도자적인 질문’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나는 누구인가” 2)죽음은 어디서 왔는가? 3)구원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즉, ‘창조’와 ‘타락’과 ‘구원’에 관한 질문입니다. 2. 본문 12절은 죄의 기원, 그 시작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죄가 어떻게 나의 죄가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시작을 아담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담의 이야기는 죄가 어떻게 일어나고 시작되었는지 말합니다. 아담이 지은 죄는 ‘선악과 사건’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죄였습니다. 3. 아담이 넘어간 유혹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을 "너 맘대로 정할 수 잇고, 너가 옳으면 의고, 너가 맘에 안들면 불의하다고 너의 마음과 능력이 기준이 되는 세상을 만들수 있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밑에서 뭐 그렇게 초라하게 사냐? 네가 인생의 주인되어서 당당하게 살아봐라 라는 것입니다. 4. 그래서 이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상수원에 누군가 극약을 뿌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뿌린 자가 시험삼아 먹다가 자신도 죽고, 그 물을 먹는 모든 자마다 죽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담이후의 모든 인류는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며, 이것이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는 죽음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5. 죽음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영생과 생명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한 결과는 죽음, 즉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6. 바울은 본문에서 또 다른 죽음을 설명합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아담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죽음이 되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부활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Typology(예표론)라는 당시의 대비수사법을 통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7. 바로 죄를 시작한 '한 사람 아담'과 죄를 마무리한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대비시킵니다. 즉 모델은 같은데 역할이 전혀 다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번째 아담이 실패한 것들을 두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셨고, 그로인해 죄인이 의인되었고, 우리는 그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고 이것이 구원의 삶입니다. 8. 이것이 복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를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불순종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순종하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셨기에 예수님의 순종은 우리의 순종이 되었습니다. 9. 예수님의 그 의로운 행위가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그 넘치는 은혜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었고 그 생명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죄였고 우리의 끝은 영원한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 그 시작과 끝, 그 모두를 바꾸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과 끝없는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10. 하나님, 그리스도의 순종이 가져온 놀라운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그 놀라운 구원의 수혜자로서, 구원의 열매를 삶 속에서 맺는 우리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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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6월 03일
In 일반 게시판
6.3(토) 롬4:13-25 <오직 믿음으로> 1. 바울은 행위의 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시간의 순서로 봤을 때,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이전에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할례가 아닌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4장 13절에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할례 대신 율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은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3.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습니다. 광야 백성보다 430년 앞서는 아브라함에게 율법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를 잘 따랐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율법은 받지 않았지만, 이미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하지만, 바울은 이 메시지를 통해서 율법이나 할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구원과 하나님의 의에 관해 사람이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5. 바울은 아브라함이 이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근거를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임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생사여탈권(absolute power of life and death)"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6. 그러나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살리시고, 죽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이러한 신뢰를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후손을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믿었습니다. 7. 그래서 자식이 전혀 없었고, 나이도 100세나 되어, 더 이상 후손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점점 더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확신을 더해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을 생각할 수 없었던, 마치 몸이 죽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살리셔서 믿음의 조상 삼으셨습니다. 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며 돌보시는 분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하루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진노 아래에 있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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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6월 02일
In 일반 게시판
6.2.(금) 롬4:1-12. <믿음으로 얻는 의> 1.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 가장 불합리한 제도중의 하나가 시험입니다. 시험에는 커트라인이 있습니다. 커트라인이 90점일때 어떤 사람이 90점이면 합격하고, 89점이면 낙방합니다. 1점차이로 89점을 받은 사람은 다시 긴 어둠의 세월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이 불합리한 제도임에도 고칠 수 없습니다. 지원자는 많고 문은 좁기 때문입니다. 2. 세상은 그렇다 치고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해 커트라인을 정하셨다면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성도가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도 하고 예배도 잘 드립니다. 하나님이 점수를 매기시며 90점이면 천국으로 인도하고, 89점이면 지옥으로 보낸다면 그것을 복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3.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어떤 의미인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2절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이 행위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도 허물과 죄와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4. 아브라함은 행위로는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게 보셨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3절 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5. 이 말씀은 창15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두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땅의 약속, 또 하나는 후손의 약속을 하셨는데 후손을 주시지 않아서 아브라함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6. 하나님은 그 순간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게 여겨 주셨습니다. 그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는 그 한 순간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할례 받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이미 그를 의롭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7. 그래서 바울은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것은 1~8절까지 나타난 '행위'도 아니고, 9~12절에 언급된 '할례'도 아니며, 13~16절에서 말하고 있는 '율법'도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고 17~22절까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아브라함이 할례받은 후에도 죄를 짓는 것을 보면 우리의 행위로는 죽을 때까지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롭다 하신 아브라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그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믿고 신뢰한 아브라함을 지켜보고 그가 성장하도록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시는 아버지였습니다. 9.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미리 아시고 한 순간 하나님을 향한 뜨겁고 간절한 그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점수 매기지 않으시고 의롭다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입니다. 10. 우리 믿음을 보시는 주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의롭다 인정해주는 주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삶과 같이, 오늘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전심으로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믿음을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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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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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목) 롬3:21-31 <새로운 의의 길> 1. 오늘부터 시작되는 6월 한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예인 가족들에게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반복해서 죄를 지어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1:18- 3:19까지의 말씀은 인간은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인간의 죄가 너무도 크고 깊기에 노력하고 애써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이제는> 오늘 본문 3:21절의 첫마디는 죄와 실패와 절망으로 가득한 인간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의와 회복과 소망이 생겼다는 선언입니다.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가 최종 판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 바울은 율법을 성취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다 이루는 인간도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님은 새로운 방법, 예수 그리스도에서 비롯된 의로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성취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5. 그 율법을 모두 성취하신 분은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도록 새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6. 이제 할 일은 우리가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라고 표현합니다(24절). 은혜란 거저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또한 그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선포합니다. 7.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 제물이 되어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정죄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심판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로 합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의입니다. 8.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우리의 모습을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는지 그 사랑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를 믿는 자라면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값 없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9. 그래서 바울은 갈6:1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고백합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이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10.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서든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차별 없는 은혜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은혜를 자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매 순간 감사의 고백을 드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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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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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수) 롬3:1-20 묵상 <의인은 없나니> 1.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좀 더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비교하여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셔서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셨기에 거룩한 백성, 의로운 백성이라고 착각하였을 것입니다. 2. 그런데 바울이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편으로는 반발심도 생겼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발을 예상한 듯 예상되는 질문들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말씀을 이어갑니다. 3. 유대인들이 반박할만한 첫 예상 질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유대인의 유익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1절). 이에 대해 바울은 그 유익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 가장 큰 유익이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절). 4.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9~10절에서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말하고,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의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시편 14편 1~3절, 시편 53장 1~3절) 5. 그러나 유대인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함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바울은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고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와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6. 이에 대해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율법이 그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다", "하나님의 긍휼이 절실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7.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 더 의롭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일 뿐입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나에게도 적용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도 의인이 아니야. 너도 죽어야 할 죄인이야”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8. 우리의 영적 교만을 내버려야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척 하지 말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참된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 진리 앞에 서서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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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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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화) 롬2:17-29 묵상 <표면적 그리스도인> 1.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죄들을 낱낱이 파헤치며 고발합니다. 첫째가 이방인의 죄이고, 두번째가 도덕주의자들의 죄이고, 세번째가 종교인들의 죄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교인들의 죄를 언급합니다. 2.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어쩌면 요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처럼 여겨져 마음 아픕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을 향해 그들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으로, 율법을 따라 지키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여기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늘 자부심을 품고 살았던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할례를 받음으로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으로 삼았습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의 정체성을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는것입니다(21절~23절). 그들 스스로 율법대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들과 같이 죄악을 저지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오히려 유대인들 때문에 모독을 받았습니다(24절). 5. 요즘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찬양과 기도의 시간에는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교회의 봉사에도 열심을 내지만, 직장과 학교, 가정등의 일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이기적이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과 화를 내면서 한 치 양보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6.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도 분별이 느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존중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이유로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7. 그래서 바울은 무할례자(이방인)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할례처럼 여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26절). 몸에 받는 할례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때 유익한 것이지, 그렇지 못할 땐 할례 받은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25절). 8.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르지 않으면서 종교적 열심만 내는 것, 종교적 관습만을 지켜 행하는 것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28절, 29절). 진짜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부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9. 교회에 다닌다고, 교회에서 행하는 종교적 의식에 참여했다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다고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10. 진짜 복음을 받아들인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교회의 생활에도 열심을 내지만, 그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일상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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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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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월) 롬2:1-16 묵상 <판단과 정죄하는 죄> 1. 연휴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읽혀지던 성경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사랑했고, 로마서를 통해 변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로마서를 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또 복음의 강력한 도전을 감당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큐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번씩 로마서를 정독하시고 묵상하시면 신앙에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2. 지난주에 보았던 1장에서 사도바울은 주로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들을 지적합니다.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 그리고 수많은 도덕적 타락의 항목들을 지적합니다. 로마인들이 얻은 권력과 부귀와 세상적인 지위로 인해 그들은 더 이상 빈곤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풍요함은 그들의 삶을 결국 황폐하게 했습니다. 3. 그들에게 더 이상의 만족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인생의 기쁨과 소망을 얻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권력의 아편에 중독이 되어 더 많은 권력과 성도착에 빠져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와 인생이라는 참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살아갔습니다. 이런 것들을 죄로 지적할 때 기쁘게 동의하는 사람들이 잇엇습니다. 4. 그들은 도덕주의자들입니다. 철학자들 중에 ‘스토아학파’ 사 같은 금욕주의자들이었고, 종교인으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사도 바울의 이런 말씀들을 들으면서 ‘맞아! 맞다고. 정말 잘도 말한다’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5. 그들은 이 시대를 보면서 늘 염려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세상이 썩어도 너무 썩었다고 근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의로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다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1.3절) 6. 판단과 정죄는 크리스챤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서로로 정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 누구를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그렇게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던 바리새인들도, 서기관들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없었습니다. 7. 왜 그랬을까요? 그 여인 안에 내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동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의 추한 모습만을 보아왔는데, 어느 순간 바로 그 모습이 나에게도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8. 내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스도인은 비판 안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굳이 자기는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9. 진짜 성도는 자기의 허물을 먼저 봅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 두고 영적인 거울인 성경을 통해 자신을 보는 사람은 자기의 결점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의 결점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를 잘 믿을수록 자기의 결점을 더 많이 보고, 그래서 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또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이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심정적으로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0.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알아 오늘도 나를 의지하기보다,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믿는 자리로 돌이키고 회개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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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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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토). 롬1:1-17 묵상 <복음에 대하여> 1. 로마서가 보여주는 복음으로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풍성하게 누리는 묵상의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에게 복된 소식은 어디에서 들려오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을 복음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2. 그래서 건강이 부족하면 건강을, 돈이 부족하면 돈을, 학벌이 부족하면 학벌을 채워주는 것을 복된 소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이는 바울이 말하는 복음도 아니고, 로마서가 가르쳐주는 복음도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건강이라면, 탁월한 의사를 찾아가면 됩니다. 돈이라면 CEO에게 잘 보이면 됩니다. 학벌이 근본적인 문제라면 교수를 구원자로 영접하면 됩니다. 3. 그러나 이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2절)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며 건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오병이어 기적 등으로 굶주림을 채워주셨습니다. 탁월한 가르침으로 우리의 무지함을 깨우쳐주기도 하셨습니다. 4. 그렇다면 예수가 복음인 까닭은 여러 문제들을 가장 잘 해결해 주시기 때문일까요? 유용하기 때문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예수가 복음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또 아무리 부하다 해도, 학벌이 뛰어나다 해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5.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진노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하나님의 진노에 거하게 되는, 대표적인 2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죄가운데 거하며 죽을수 밖에없는 존재로 계속 살아가는 방식과 자가 의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방식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6. 그러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가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소식입니다. 7.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보냄 받은 자"라는 인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16절에서 그는 복음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아멘. 8.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위해 보냄 받은 자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바울처럼 확실한 "신분 의식"을 우리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다." 이런 확실한 "신분 의식"을 갖고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사랑의 하나님, 로마서 말씀을 통해 복음의 풍성함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해내는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대신해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감사하고 감격하는 복음의 성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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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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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금) 민36:1-13 묵상 <민수기 마지막 메시지> 1. 오늘 본문은 민수기의 마지막 장입니다. 내용은 민27장에 나오는 슬로브핫의 딸들에 관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 슬로브핫이 아들 없이 딸만 다섯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들이 없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업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이름과 기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면서, 딸인 우리에게도 기업을 상속받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2. 하나님께서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주셔서, 대대로 적용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슬로브핫이 속한 길르앗의 지도자들이 이 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을 상속받은 후에 다른 지파의 남자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 그녀들이 받은 기업도 다른 지파의 소유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3. 여자는 결혼을 하면 자동적으로 남편에게 속하게 되기 때문에, 재산도 남편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넘어간 기업은 희년에도 돌려받을 수 없기에 영구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고 말합니다. 희년법에는 매매한 땅을 돌려줘야 한다고 되어 있지, 유산으로 상속된 기업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을 주십니다. 길르앗 족속 지도자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시며, 슬로브핫의 딸들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지만,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만 시집을 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모두 조상의 기업을 지켜갈 수 있을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 명령에 순종하여 다섯 명 모두 아버지의 형제의 아들들에게 시집을 갑니다. 5. 오늘 본문은 백성들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지도자와 의논하고,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은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셨고, 지도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바르게 전달함으로 백성들은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정말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 이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방식입니다. 늘 나의 문제들을 우리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묻고, 하나님의 뜻이 전달된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태도는 슬로브핫 딸들을 통해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결혼이 예이지만 2사람만 좋으면 그만이 아니라, 가정, 사회의 종교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때로는 내 의지와 자유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민수기 마지막 말씀은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니라”(13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명령으로 시작된 민수기는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압 평지에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칩니다. 8. 비록 광야의 여정 가운데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게 말씀해 주시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민수기를 묵상하면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 묵상했습니다. 9. 민수기 마지막을 묵상하는 데, 슬로브핫의 딸들의 순종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절망적인 광야에서, 희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행진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던 묵상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해피엔딩 하시기 바랍니다. 10.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보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광야 40년이 이제 희망을 보며 가나안을 행진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음에 주여 또 온전케 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주님 오실 그날까지 우리에 가는 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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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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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목). 민35:22-34 묵상 <살인자에 대한 규례> 1. 레위지파에게 준 48개의 성 중 도피성 여섯은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 각각 셋씩을 두고, 사람을 실수로 죽인 경우 보복으로부터 피할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때 도피성으로 간 피의자를 회중이 재판장이 되어 판결하는데 살인을 한 경우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죄가 성립되며, 고의적인 살인으로 확정되면 규례대로 사형을 집행합니다. 2. 하나님은 과실치사-실수로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억울한 피해자나 또 다른 보복을 낳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법을 만들어주신것입니다. 그래서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임시로 도피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기까지 기거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즉 허물이 있을 망정 무고한 보복을 당하지 않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벌을 받도록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죄로 인한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부지중에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성에 피신해 있던 자는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이 살해당한 자의 피에 대한 보상이 되어 살인자의 피 값을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4. 이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우리 대신 피 흘리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은 죽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롬 5:10). 5. 하나님은 살인자를 재판할 때는 최소 두 증인의 증언을 확보하라 하셨습니다. 정의를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판으로 억울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속단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면밀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6. 또한 하나님은 우발이든 고의든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서 속전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돈이 생명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생명을 살 수있다는 생각, 돈으로 죽음을 보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생명보다 돈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곳은 하나님 나라일 수 없는 것입니다. 7. 천하보다 귀한 것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가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보자면 생명의 가치는 폄훼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사람의 생명은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 아니라 이미 돈과 권력으로 둔갑한 지 오래 되고 만 것입니다. 8. 전쟁. 총기사고등의 온갖 살인 때문에 온 땅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공동체 안에서 생명과 인격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몰아내며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세상으로 바꿔가야 하겠습니다. 9. 하나님,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통해 이 땅이 거룩한 땅으로 일구는 일에 헌신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억울한 자의 신원을 들어주시고, 우리는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위로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고, 우리가 거룩한 공동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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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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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수) 민35:1-21 묵상 <레위인의 성읍과 도피성> 1. 민35장은 가나안 땅에 배정해야 할 특별한 성읍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레위지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거할 성읍과 성읍 주변의 들을 주셨는데 말 그대로 거주할 수 있는 집과 가축을 둘 수 있는 약간의 들을 주신 것입니다. 2. 그들에게 주신 성읍은 48개로, 각 지파들은 자신들이 얻은 기업의 분량대로 레위인을 위한 성읍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전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레위 지파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일하고 얻은 소산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3. 레위 지파는 흩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따라 살아가며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섬기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의 기업으로 주셨습니다(민18:24).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레위인들의 삶을 백성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놓으셨습니다.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 속에 거주하는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 표지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레위인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하게 될 때 레위인의 성읍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레위인의 성읍이 사라지면 곧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의 거할 성읍으로 주신 48개의 성읍 중 6개의 성읍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 성읍들을 도피성이라고 합니다. 도피성이란 의도치 못한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이 피할 수 있는 성입니다. 실수나 사고로 사람을 죽이게 된 사람이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도피성 제도입니다. 6. 이 도피성 제도는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모든 죄를 내어놓으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의 피난처입니다. 예수님은 피난처로서 죄인이 예수님께 피하고, 날개 그늘 밑에 숨으면 죄가 사해집니다. 그 속에서 참 평화를 얻습니다. 7.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 있는 도피성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죄와 고통에서 피해 온 자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은혜와 평강 그리고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8. 그러나 고의로 살인한 자는 결코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없었습니다. 남을 미워한 나머지 불타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이웃을 살해한 자에게도 결코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도피성으로 피신했다 해도 다시 끌려 나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살인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살인죄의 형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9.본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기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라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말씀함으로써 은혜를 남용해서는 안 됨을 말씀합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은혜를 입은 우리는 은혜에 감사하며 은혜에 힘입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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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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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화) 민33:50~34:29 묵상 <여호수아와 갈렙> 1. 약속의 땅을 코앞에 둔 이스라엘에서 특별한 사람이 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 두 사람은 출애굽 1세대가 다 광야에서 삶을 마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허락받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조차 들어가지 못한 약속의 땅을 밟는다는 사실은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이 갖는 가치와 의미가 이스라엘 다음 세대에 순전히 이어져야 한다는 역사의 당위성이기도 합니다. 더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이 평소에 보인 온전한 믿음과 충성스러움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3.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 지위를 가졌습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모든 백성이 그의 사람됨과 지도력을 익히 보아온 바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를 모세와 견줄 것은 아니더라도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드는 이가 종종 있었으나 여호수아에게 그런 자는 없었으니 그의 지도자다운 품격이 칭찬할만합니다. 4. 모세는 이스라엘 9지파와 반쪽 지파에게 명령하여 지파의 대표를 뽑도록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거명되는데 아마도 다른 지파보다 먼저 대표자를 뽑았거나 유다 지파의 역량이 가장 우월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유다 지파의 대표로 뽑힌 이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입니다. 5. 그런데 성경은 갈렙을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그니스 사람’(수 14:6)으로 소개합니다. ‘그니스 사람’에 대하여서 단언하기가 곤란하지만, 대개 갈렙을 귀화한 이방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가 이스라엘의 유력 지파인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되었다는 점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합니다. 6. 하나는 귀화에 성공한 갈렙의 노력,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귀화인이라도 자기 지파의 대표로 뽑는 유다 자손의 개방성입니다. 갈렙도 탁월하고, 유다 지파도 훌륭합니다. 만일 ‘그니스’가 비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정통 유다 지파의 한 가문이라 하더라도 갈렙의 미담이 흐려지지는 않습니다. 7. 갈렙은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 버금가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쟁자가 아니라 조력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배려와 선택을 통하여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을 밟는 특별인이 되었으나 여호수아와 같은 대우 받기를 청하거나 탐하지 않았습니다(수 14:6). 8. 늘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갈렙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배웁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일꾼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되게 하십니다. 처음 명령을 받았던 지도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갔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새 세대를 일으키시고, 그 땅을 분배할 새 지도자들을 세워 기어이 당신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9. 수많은 사람이 부름을 받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헌신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일을 이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우리를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에 가득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맡은 역할을 성실히 감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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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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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월) 민33:1-49묵상 <옛일을 기억하라> 1. 민33장 1-49절은 출애굽 광야 여정의 회고 기록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부터 모압 평지까지 왔습니다. 40년은 결코 짧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최소 60만명 이상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죽었습니다. 2. 이 여정을 함께 했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도 죽었습니다. 모세도 얼마 있지 않으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자신은 들어가지 못하는 가나안을 보면서 출애굽부터 지금까지 지나온 광야 여정을 회고하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그 노정은 이러하니라 하고 3-42절에 45곳의 지명을 언급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들이지만, 모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소 하나하나를 기록할 때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고백을 통해 그의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이 여정 중에 ‘진 쳤고’라는 말이 41번 나옵니다. 진 쳤고 진을 치고 진을 치고 진 쳤고 진을 쳤다는 말이 41번이나 되풀이 됩니다. 이것을 신1:31-33을 통해보면 광야의 노정에 진을 친 모든 곳은 그들이 찾아낸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보다 먼저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내내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이스라엘을 안고 인도해오셨습니다. 5.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많이 진을 치고 떠나고를 반복했지만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안고 오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인도해 온 모세입니다. 그 하나님이 모세가 죽기 전에 내가 너를 통해 인도해낸 이 백성들의 노정기를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6.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여정동안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은 하나님의 기적과 권능이 주를 이루지만 그 이후 광야 생활의 대부분은 불순종의 연속입니다. 광야의 지명들은 이런 이스라엘의 뼈아픈 실패와 죄악들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7. 그러나 그 모든 실패와 불순종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 눈앞에 보이는 모압 평지에 서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광야 여정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런 이스라엘을 안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의 기록입니다. 8. 우리의 신앙여정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을 만난 출애굽의 그 감격의 사건이 기억나는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격과 기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실패했던 때와 장소도 있죠. 그러나 돌아보면 어떻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늘 우리의 연약함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은혜와 큰 자비입니다. 9. 수많은 연약과 탐욕과 어리석음과 죄악이 우리의 지난 삶의 걸음걸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죽어 마땅한 우리를 이 시간까지 은혜와 자비로 덮어서 여기까지 인도해오셨습니다. 10.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 하셨네. 이 찬송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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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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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월) 민28:16-29:11 묵상 <절기를 통해 기억해야할 것> 1. 교회 절기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절기마다 신앙의 깊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고난과 그리고 부활, 그에 따른 감사! 이렇게 교회의 절기는 기독교의 본질을 나타내고 상징합니다. 목회 경험상 절기의 아쉬움이 있다면 성도들이 절기 때만 그 의미를 기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해마다 지켜야 할 절기를 정해 주시고, 그 절기에 드릴 제사와 예물도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월절과 칠칠절, 나팔절과 속죄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민28:16~25절은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내용입니다. 3.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그중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시작과 관련된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날이 이스라엘 달력의 시작이 되는 기준입니다. 그 날짜는 우리 달력으로는 3-4월경이 되며 유대인 달력으로는 아빕월(혹은 니산월)인 7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3. 유월절에 바로 7일간 이어지는 무교절에는 부풀리지 않은 딱딱한 빵을 먹으면서 이집트에서 고통스럽게 지냈던 일을 기억합니다. 무교병은 마쪼(Matzo, 혹은 Matzah 마짜)라 하여 고난의 빵이라 불리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먹고 절제함으로 자신을 억지로 어렵게 하며 광야에서 주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지낸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4. 26~31절은 칠칠절을 소개합니다. 무교절이 시작되는 1월 15일 다음 날인 1월 16일은 처음 거둔 보리를 드리는 초실절입니다. 이날부터 7주가 지나면 칠칠절, 곧 오순절이 됩니다. 칠칠절에는 처음 거둔 밀을 드립니다. 칠칠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곡식을 수확하기 시작하면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5. 곡식이 자라는 데 필요한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리시는 분은 가난한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이나 아스다롯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수확을 끝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확을 시작하면서 감사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첫 예물을 주셨으니 남은 추수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과 감사를 담아서 제물을 드리는 절기가 칠칠절입니다. 6. 29장에서 소개하는 나팔절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의 신년과 같은 개념으로 전국에서 나팔을 길게 부는 걸로 일년을 시작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쉐파르 라고 하는 나팔을 길게 부는 걸로 절기가 시작됩니다. 일곱번째 달 1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종교력 달력으로치면 그날이 바로 1월 1일이 됩니다. 그리고 일곱째 달 10일이 대속죄일인데 이 날은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직접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뵙는 유일한 날입니다. 7. 그리고 이 날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금식을 선포한 날입니다. 그래서 재를 뒤집어 쓰고 하루종일 금식하며 슬퍼하는 날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통해 일년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속죄를 선포하고 그 뒤로 이제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수장절 장막절 초막절 세 이름이 다 같은 명절입니다. 그걸 준비하는 그런 절기가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8. 절기는 더 이상 구원 받는 조건이 아닙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애기하면 절기는 원래부터 구원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절기를 왜 주셨을까요? 지금 이 본문이 쓰여질 당시의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9. 전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한테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상번제를 드려라. 안식일을 지켜라 월삭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수 많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라! 이게 하나님이 전시에 이스라엘 백성에 주신 명령입니다. 오히려 전쟁시는 제사를 멈춰도 될꺼 같은데 하나님은 정성을 다해 제사할 것을 명령하시는 겁니다. 10.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계획이 다 있으시며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두려워 하지말고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은 평상시처럼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절기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승리는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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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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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금) 민27:1-11 묵상 <슬로브핫 딸들의 탄원>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 받는 기준은 20세 이상의 남자의 수에 따라 결정됩니다. 숫자가 많으면 땅을 더 주고, 숫자가 적으면 땅을 적게 주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므낫세 지파 중 슬로브핫이란 사람은 출애굽 1세대 입니다. 그에게는 딸만 다섯이 있었고, 아들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2. 따라서 슬로브핫이 죽게 되자,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 되는 기준에 따라 그의 딸들은 아무런 땅도 상속받지 못하게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아들이 없이 죽은 가장은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는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땅은 곧 생명과도 직결 됩니다. 만일 슬로브핫의 딸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 받지 못한다면 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막히게 됩니다. 3.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버지가 아들 없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분배 받는 대상에서 제외 되는 억울함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해서 딸들인 자신들에게도 아버지 기업을 상속해달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엄격한 가부장 부족 문화 시대에서는 파격적인 제안이고, 요청이었습니다. 당시로는 분명 무리한 요구가 맞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딸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딸들의 탄원에 넉넉히 응답해주셨습니다. 은혜입니다.(7절) 4. 우리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보여준 자세와 이 문제를 다시 하나님 앞에서 가지고 나아가는 모세의 믿음에서 많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시 많은 가정들이 이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슬로브핫의 딸들만 용기를 내어 모세 앞에 나아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공평한 판결을 내려주실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5. 만일 슬로브핫의 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상황과 필요를 아뢰지 아니하였다면, 이들은 영원토록 기업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역사에서 없어졋을 것입니다. 구하는 자가 받습니다. 찾는 자가 찾게 됩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립니다. 6. 이것이 성경의 원리 입니다. 구하지 아니하면 받지 못하고, 찾지 아니하면 찾을 수 없고, 두드리지 아니하면 문은 결코 우리에게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늘 우리에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구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람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태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와 간구를 통해 부어지는 그 분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8. 오늘 이 무엇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습니까? 슬로브핫의 딸들이 겪은 상황처럼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억울한 상황, 어려운 환경, 힘에 겨운 문제들… 무엇이든지 염려하지 마시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맡기십시오. 9.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또한 놀라운 은혜를 우리의 삶에 부어 주실 것입니다. 구하는 자마다 받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주를 의지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구하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 귀한 은혜를 받고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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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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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목). 민26:52-65 묵상 <기업 분배의 원칙> 1. 민수기는 책 제목그대로 백성들의 인구조사한 숫자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2차에 걸친 인구조사후 모세를 통해 땅의 분배를 하시기위한 원칙을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2. 하나님은 땅분배의 몇가지 원칙을 다음같이 제시하십니다. *인구수가 많은 자에게는 많은 기업을 적은 자에게는 적은 기업을 준다.(54) *각 지파의 조상의 이름을 따라 분배 한다.(55) *그 기업의 위치는 제비 뽑아(by lot) 나눈다.(56) 3. 먼저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도록 말씀함으로써 인구 비율에 따라 많은 지파는 넓게, 적은 지파는 좁다는 평등한 분배기준입니다. 그래서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주고,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줌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십니다. 공헌도라든가 지명도보다 수효를 기준으로 하십니다. 4. 두번째는 제비를 뽑아 분깃을 정하였습니다. 이는 각 지파에 할당된 땅이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하신 것임을 인식시키기 위함입니다. 곧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서 범사에 감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받은 땅의 이름은 지파 조상으로 함으로써 땅이 지속해서 보존되도록 하였습니다. 5.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동시에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땅의 기업도 허락하여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 하나님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 레위 지파는 특별히 하나님께 선택된 지파로서 다른 지파와 함께 계수되지 않고 따로 그들만 계수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이 기업을 주시는 대신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7. 하나님의 제사장이 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분깃임을 믿고 세상 모든 재물을 분토처럼 여겨야 합니다. (57-62) 철저히 순간순간 말씀과 성령의 다스림 속에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분깃이기에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아 풍요한 삶을 살도록 합시다. 8. 두번째 인구조사는 광야에서 새로이 태어난 새 세대가 모두 인구 계수를 받았는데 이는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고 대적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였기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꼭 약속을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인구조사를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결심과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10.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믿음을 가지고 성취되어질 미래를 향하여 방황하지 않고 나아가게 인도하옵소서. 광야의 생활을 정리하고 허락하실 새 땅을 주실 주님을 찬양하며 은혜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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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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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수) 민26:1-51 묵상 <두번째 인구조사> 1. 하나님은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24.000명이 죽은 후 모세에게 인구를 계수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염병으로 죽은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불신앙 때문에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었던 자들의 멸망이 끝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절망과 방황으로 점철되었던 광야 40년을 마감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분깃점이 됩니다. 2.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을 두번 계수하도록 하십니다. 처음에는 광야 40년 생활을 시작할 때요, 두번째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입성하기에 앞서 최후로 인원을 점검하여 가나안 전쟁을 대비하고, 기업을 분배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미 1차 인구조사 때 선택된 60만은 두명 외에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가나안에서 싸울 군사를 점검하기 위해서 인구를 계수하도록 했습니다. 3. 그래서 1차 인구조사에서는 각 지파의 인구 총수가 기록되었지만, 본장에는 더 세분되어 가족 단위로 인구조사가 되었습니다. 인구조사의 목적이 ‘이십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라는 군대조직으로서의 편성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전투적 형태를 갖추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4. 인구조사를 한 결과 이스라엘은 모두 60만 1,730명이었습니다. 첫 인구조사 때의 60만 3,550명보다 1,820명이 감소한 숫자입니다. 척박한 광야의 환경과 이스라엘의 거듭되는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을 감안하면, 그들이 얼마나 광야를 무사히 지났는지를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5. 하지만 광야에서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기필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의지와 집념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6. 낮엔 뜨거운 태양이 밤엔 추위가 엄습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것 외에는 없고, 외부의 침입에 노출된 광야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7. 우리가 사는 현실도 광야입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며 역사하십니다. 광야는 고통스럽고 힘든 곳입니다. 한 모금의 물, 빵 한 조각도 구할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은혜요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8.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손으로 살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의 나를 존재케 하는 것이 광야임을 기억하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부요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9. 하나님 아버지. 광야에서도 번성케 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당신의 사랑과 신실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이 우리 가정에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성장하는 우리 신앙과 믿음 되길 소망합니다. 더욱 번성하고 창대한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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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2023년 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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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민25:1-18 묵상 <거룩한 분노> 1. 민수기 참 묵상하기 어렵고 재미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 기회 아니면 언제 민수기를 묵상하고 공부하겠습니까? 성경은 나 좋은 부분만 좋아하는 편식을 하면 영적으로 허약해집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성령의 조명을 통한 은혜와 진리의 깨달음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무릅니다. 싯딤은 광야의 종착지인 동시에 가나안 입성의 마지막 준비 장소입니다. 여호수아 2장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수2:1)’ 라고 시작합니다. 3. 약속이 현실로 되기 한 걸음 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준비해야 할 곳을 정착지로 여깁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내내 ‘머무르고 싶다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머무르자마자 문제가 생깁니다. 머무르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생각하고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않은 것이 재난의 시작이었습니다. 4. 광야에서 태어나 정착해본 적 없던 이스라엘 2세대에게 머무름은 긴장을 풀게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이 정도 신앙생활하면 괜찮다’ 고 속삭입니다.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않고 주저앉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되었다고 하기 전에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기에, 성경일독 했기에, 찬송가를 다 외우기에, 나이가 많기에, 직분이 있기에, 교회에 아는 사람이 많기에, ‘이 정도면 되었다’ 고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우리가 내딛어야 할 걸음이 남았습니다. 5. 영적 방심은 큰 비극을 가져옵니다. 명백한 의도를 갖고 조직적으로 유혹하는 여인들 앞에 이스라엘은 마음을 빼앗깁니다. 호감이 갔다가, 마음이 흔들리다, 정욕의 물결에 몸을 던지니, 자신들이 무엇을 먹고 누구에게 절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음행와 신앙의 주인을 하나님에게서 바알로 바꾸어 버리는 두가지 큰 잘못을 하게 됩니다. (1-3절). 6. 오늘 본문 싯딤에서의 음행과 우상숭배 사건은 이스라엘이 자기의 주인을 여호와 하나님에서 바알로 바꾼 사건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지게 하셧고 그래서 그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7. 오늘 본문에는 상반된 두 사람이 나옵니다. 비느하스 와 시므리 두 사람입니다. 시므리는 바알브올 사건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온 진영을 덮어 백성 수만명이 염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중에도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자기 장막으로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6-8절). 8. 반면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는 그런 시므리와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창으로 처단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했던 젊은 제사장입니다. 악을 향한 비느하스의 분노는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했습니다. 9. 오늘날은 죄에 대한 경각심이 없습니다. 죄에 대한 분노가 없습니다. 죄에 자꾸 빠져드는 자신을 용납하고 용서하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정말 결단하고 주님 앞에서 서려는 몸부림을 없어졌습니다. 비느하스는 죄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이 마음이 필요합니다. 비느하스의 분노가 필요합니다. 죄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10. 하나님. 이스라엘이 자기 몸을 만족시키는 것을 위해 타협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난 것을 보았습니다. 악을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악한 것이라면 작은 것이라도 타협하거나 의논의 대상으로 삼지 않게, 떠나게, 단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머뭇거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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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ng Gil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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